[이것이 뜨겁다]공정위 '클린마켓 프로젝트' 외압의혹

  • 입력 2001년 4월 18일 18시 33분


2월7일 공정거래위원회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긴급 소집됐다. 평소 회의와는 달리 이날 분위기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남기(李南基) 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클린마켓 프로젝트 조사대상에 신문 방송을 넣으려 합니다. 각자 의견을 말씀해 보세요.”

무거운 분위기가 회의장을 감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간부들은 이 위원장이 어색한 표정을 감추느라 애쓰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참 지나 간부들이 하나 둘씩 말했다. “글쎄, 이 시점에서 신문사 조사를 하러 나가야 하는지….”(A국장) “신문사도 기업인데 조사에서 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B국장) “국세청이 이미 나간다고 했는데 공정위까지 가세하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을까요.”(C간부)

정책국에선 공정거래법 위반 횟수와 소비자 피해상담이 많은 사례를 들며 언론사의 위반횟수가 적잖이 발견됐다고 거들었다. 이날 회의에서 신문사를 조사대상에 넣기로 결론을 지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일부 간부들은 “클린마켓 프로젝트가 신문사 조사를 위한 것이었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젝트 결정이 너무나 다급하게, 또 전격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간부들도 몰랐던 언론사 조사계획〓공정위에서 클린마켓 프로젝트가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해 11월경. 정책국에서 “내년이면 공정위 20주년으로 성인이 되는데 그동안 신고나 받아 처리하는데 바빴지만 혼탁한 시장을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의료 제약과 정보통신 등 5개 업종으로 한정돼 있었다.

허선(許宣) 정책국장이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하지만 1월29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까지도 구체적인 업종이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단지 5개 업종에서 5, 6개로 범위가 신축적으로 조정됐다. 김병배(金炳培) 공보관은 “대통령께 보고할 때도 신문사 얘기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클린마켓 프로젝트에 언론사를 포함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그는 “신문사도 조사해야겠다고 결정한 직후에 국세청이 언론사 조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것을 미룰 경우 하반기에 가서야 조사가 가능할 건데 그럴 경우 언론탄압이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 분명해 내친 김에 조사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의사결정에 참여한 간부는 위원장 부위원장 정책국장 등 일부 간부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국장들은 회의 분위기를 보고서야 낌새를 알아차렸다는 것.

▽‘속전 속결’ 공정위 프로젝트〓2월7일 신문사 조사발표가 나온 후 공정위는 언론사 조사와 신문고시 제정을 위해 숨가쁘게 움직인다. 이한억(李漢億) 조사국장은 4개 조사반을 편성해 2월12일부터 신문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국 내 조사기획과 조사1과 조사2과 등 3개과로는 모자라 전직 조사국 베테랑 출신인 독점국 김길태(金吉泰) 독점관리과장이 4반장으로 합류했다.

2월16일 이 위원장은 국회 답변에서 신문고시 부활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앞서 조학국(趙學國) 사무처장은 같은 달 12일 “제도개선 사항은 타 부처에 의견을 내거나 규제개혁위원회에 올려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사 조사 시작과 함께 신문고시 부활을 염두에 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같은 달 28일엔 안희원(安熙元) 공정위 경쟁국장이 부랴부랴 기자실을 찾았다. 안 국장은 “신문사들의 자율적인 시장개선 노력이 미흡하고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신문고시 부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고시부활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97년 고시 때와 달리 판매 광고뿐만 아니라 독과점지위 신문사에 대한 규제와 지국과의 불공정거래관계 부당지원행위 등이 두루 포함돼 있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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