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파이란>양아치와 중국여인의 아릿한 사랑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48분


비릿한 바다 내음 물씬한 인천. 지지리도 못난 놈이란 표현에 딱 어울리는 남자가 있다. 이름은 이강재. 직업은 명색이 깡패지만 새까만 후배에게서도 ‘형님’ 소릴 못듣고 ‘강재씨’로 불리는 3류 양아치다. 함께 출발한 친구는 조직의 보스가 돼있는데 그는 호객꾼으로 밀려난 신세다. 입은 살아서 늘상 “내가 호구로 보이냐”며 욕설을 뇌까리지만 동네 아줌마에게도 머리털을 잡힌 채 봉변당하기 일쑤다.

굽이굽이 태백줄기를 넘어 동해 바닷가의 한촌. 한 겨울 혹한에도 맨발로 이불빨래를 마다않는 중국 여인이 있다. 이름은 파이란. 시골 세탁소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그녀는 핏줄을 찾아 중국에서 왔다가 오갈곳 없게 된 신세다.

그녀는 불법체류자의 신세를 면하려고 돈을 주고 일면식도 없는 한국 남자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아내로 받아준 남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쉬리’의 최민식과 ‘성원’의 홍콩스타 장바이츠(張柏芝) 주연의 ‘파이란’은 이렇게 산맥으로 갈라진 두 개의 바닷가를 오가는 영화다.

장바이츠에게 최민식이란 남자의 존재는 사진 한장뿐이고 최민식에게 여자의 존재는 무(無)에 가깝다. 도대체 이 불가능한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나 최민식이 두목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갈 결심을 굳히는 순간 느닷없이 아내의 사망 통지가 날아든다. 아내의 죽음?

그제서야 자신의 삶에 뛰어든 여자의 존재를 깨달은 남자는 눈덮인 산맥을 가로지르는 기차안에서 여자의 편지를 처음으로 읽는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그렇지만 강재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왜냐하면 나랑 결혼해주셨으니까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죽음 때문에 묵묵히 접어야했던 사랑의 쓸쓸함을 담았다면 ‘파이란’은 바로 그 죽음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애잔함을 그린다.

술에 취해 허공에 엉덩방아를 찍는다거나 설거지 그릇이 옆에 쌓인 싱크대에다 오줌을 싸는 최민식의 연기는 너무도 사실적이다. 그 때문에 여러 명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치 그 혼자만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반면 홍콩영화에서와 달리 화장기 하나없이 등장한 장바이츠의 연기는 군더더기가 없을 만큼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대부분의 연기가 대사없는 표정연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데뷔작 ‘카라’에서 평범한 연출에 머물었던 송해성 감독도 관객의 눈물샘이 터지려는 순간 카메라를 원경으로 쓱 돌리는 멋을 부린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강약 조절이 너무 불규칙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원작소설 ‘러브레터’를 한국 실정에 맞게 각색했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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