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줄리아와 브래드의 '개인기' 영화<멕시칸>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48분


할리우드 최고의 남녀 스타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함께 출연하는 영화라면 흥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생기고 터프한 브래드 피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 주기라도 하면 소리 못 질러 안달 날 여성팬 많을 테고 ‘기린’처럼 쪽 빠진 다리에 입꼬리를 귀에 걸고 웃어젖히는 로버츠 앞에 녹아내리지 않을 남정네는 드물 테니까.

28일 국내 개봉하는 ‘멕시칸’이 미국에서 두 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은 순전히 로버츠와 피트 덕분이다. 시나리오가 엉성하면 어떻고 캐릭터가 허술하면 좀 어떤가. 남녀 관객 모두 그들을 영접할 준비가 돼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멕시칸’은 두 스타로 밀어붙인 영화다. 어리숙한 3류갱 제리(브래드 피트),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일하는 게 꿈인 생기발랄한 아가씨 샘(줄리아 로버츠)은 동거하는 사이지만 두 개의 중심 에피소드 속에서 따로따로 주인공 노릇을 한다. 그들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영화 앞뒤에서 잠깐뿐이다.

보스의 협박에 못 이겨 전설의 총 ‘멕시칸’을 받으러 멕시코로 떠난 제리는 손에 쥐었다가 놓친 총을 되찾기 위해 말도 안 통하는 멕시코에서 생고생을 한다.

피트는 블랙 코미디 같은 설정 속에서 슬랩스틱 배우 노릇을 곧잘 해낸다. 적 앞에서 칠칠 맞게 총을 흘려 관객을 웃기고 멍청한 당나귀와 침 질질 흘리는 떠돌이 개와 승강이를 하는 모습은 충분히 귀엽다. 가끔 정색해야 할 긴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표정이나 행태는 어색하지 않지만 어? 사람이 저렇게 바뀌기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제리가 멕시코로 떠나자 홧김에 라스베가스로 떠난 샘의 에피소드는 로맨틱 코미디 같다. 제리가 가져올 총 ‘멕시칸’을 빼앗기 위해 제리의 연인인 샘을 킬러(제임스 갠돌피니)가 인질로 잡는데 납치 순간 말고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일은 없다. 킬러라는 작자가 알고 보니 남자와의 사랑에 상처받은 게이인데다 속정까지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인질이 납치범에 동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게 있지만 샘은 거짓말처럼 너무도 빨리 납치범과 친해져 오누이처럼 각자의 사랑 얘기를 주고받는다.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강간은 매력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분노 때문에 하는 거다, 왜 섹스로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대화는 감동적이기보다는 웃어줄만하다.

‘멕시칸’을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한다면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의 짝은 분명 제임스 갠돌피니지 남동생 같은 브래드 피트는 결코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풍부한 표정으로 호들갑스럽지만 속은 무른 수다쟁이 샘을 연기한다. 날렵한 각선미는 여전히 보기 좋지만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배꼽티로 아래로 드러나는 군살 하나 없는 복부(腹部)의 민틋한 아름다움이다.

‘나이키’ ‘코카콜라’ CF와 영화 ‘마우스 헌트’를 만든 바 있는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산만해질 가능성이 많은 두 개의 드라마를 끌고 가느라 애를 쓰면서도 ‘멕시칸’이란 총에 얽힌 전설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는 과욕을 부린다.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전설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인데 궁금하지도 않고 재미도 별로 없는 장면을 세 번이나 보는 관객으로선 사실 김이 샌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는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지듯 영화에서 술술 빠져나간다. 제리를 구하러 미국에서 온, 제리 만큼 띨띨한 갱 선배는 온데간데 없이 은근슬쩍 사라지고 멕시코와 미국에 떨어져 있던 제리와 셈이 재회해 함께 돌아다니는 곳이 멕시코인지 미국인지 한동안 헷갈린다.

'멕시칸'은 두 거물이 연인으로 출연한 영화 치고는 달콤함이나 재미가 성에 안 차지만 그들 특유의 매력은 거부할 수 없는 영화다. 두 사람 보는 게 목표라면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것이다.

김태수 <동아닷컴 기자> t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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