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즐겁다] 영어, 어릴 때 배워야 쉽다?

  • 입력 2001년 4월 20일 10시 19분


요즘 어린이 영어 붐이 일고 있다. 외국어학원은 물론이고, 속셈학원, 심지어는 태권도장, 웅변학원에까지 어린이 영어 반이 생기는가 하면, 한 달에 무려 70만원씩이나 받는 영어유치원까지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학원뿐만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교사가 찾아오고, 새벽마다 전화를 걸어서 5세짜리에게 영어단어를 물어보는 학습지 회사도 있고, 집에서 영어동화를 들려주기만 해도 저절로 영어가 터진다는 광고가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나붙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우리 아이들의 영어가 뻥뻥 터져서, 10년 공부에도 벙어리 신세를 면치 못하던 부모들의 영어 한을 단숨에 씻어줄 것만 같은 기세다.

그러나 무턱대고 허둥대기 전에 잠깐 몇 가지 따져보기로 하자. 도대체 아이들에게 ‘왜’ 영어를 가르치는지, 가르친다면 몇 살부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 좋은지, 이를테면 회화만 가르치는 게 좋은지, 읽기 쓰기도 함께 가르치는 게 좋은지, 문법을 가르쳐도 좋은지, 또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도 헷갈리지나 않을 것인지 등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꽤 있다.

우선 ‘왜?’ 가르치는가부터 생각해 보자. 우리 연구소에서 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간혹 “이민 가려고” “조기유학 보내려고” 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다수는 “날로 국제화하는 세상에서, 영어는 앞으로의 입시와 출세에 필수적인 것이므로 기왕이면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서, 회화는 물론이고, 입시준비까지 탄탄히 하며, 사회에 나가서는 유창한 영어로 국제무대를 누비게 하자”는 것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목적이다.

당장 외국에 배낭여행을 보내려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하도 못하니까 애들이라도 가르쳐서 통역을 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고 앞으로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시키는 공부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는 지금 당장 몇 마디 가르쳐 놓고 좋아하기보다 먼 앞날의 성공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흔히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빨리 외국어를 배운다”는 말들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언어습득에는 생물학적인 시간표가 있다. 만 12세 정도까지 저절로 말을 배우는 문이 열려 있는데, 이 시기에 한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환경에서 살면, 일부러 공부하지 않아도 거의 저절로 그 언어를 습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릴 때 이민이나 유학을 가서 하루종일 영어 환경 속에서 자라났을 경우에는 아이들이 쉽게 외국어를 배운다는 말이 맞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같이 일상생활을 한국어로 하는 환경에서, 기껏해야 일주일에 서너 시간 정도 영어를 배우는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시행해 본 바에 의하면 외국어로 영어를 배울 때, 아이들이 청소년이나 성인들보다 더 빨리 배운다는 일반적인 속설은 어디에서도 입증된 바가 없다.

따라서 “아이들이니까 쉽게 배우겠지” 하고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영어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어렸을 때 머리에 심어진 것이 평생토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해서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정철/ 정철언어연구소 소장 www.jungch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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