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도쿄에서

  • 입력 2001년 4월 20일 19시 16분


◇베일에 가려진 천황제 日사회를 읽는 바코드

최근 일본에선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 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상식 있는 지식인들은, 이 교과서를 비롯해 이 모임의 멤버들이 쓴 책들을, 학문적으로 매우 치졸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책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일본은 좋은 나라’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자장가처럼 반복해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의 맨 밑바닥에는 천황제라는 단단한 주춧돌이 놓여 있다. 일본을 찬미하는 것이 천황 찬미와 한 덩어리가 되어, 일본 특유의 국가주의를 생산하고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조차도 천황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천황에 관한 자료나 정보는 거의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올 4월 1일부터 일본에서는 행정기관의 소장 문서 공개를 의무화한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의무를 당당히 거부하는 관공서가 있다. 천황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구나이초(宮內廳)가 바로 그 기관. 구나이초에는 행정문서 뿐 아니라, 7세기∼19세기의 천황관계 고문서 약 40만점이 보존되어 있다.

일본 각지에는 천황의 능과 황족의 묘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러나 구나이초는 천황가의 신성한 묘라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학문적 조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천황의 묘라는 것도 실은, 대부분이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시대 초기에 걸쳐 확정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존황(尊皇) 사상의 열광 속에서 그 때까지는 어떤 유적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았던 것을, 천황의 능으로 교묘하게 분장시켰던 것이다. (완전히 신축된 묘도 있었다!)

여기에 메이지 정부의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는 천황묘를 선전함으로써, 천황이 일본과 한 덩어리라는 신앙을 국민에게 심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음모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카하시 히로시(高橋紘)가 ‘상징천황’(이와나미신서)에서 대단히 박진감 있게 논하고 있으며, 가이케 노보루(外池昇)의 ‘천황릉의 근대사’(요시카와고분칸)는 전문적인 견지에서 천황릉에 대해 세밀하게 파헤친 역작이다.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가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천황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천황제야말로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관건이다.

이러한 천황제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학술적으로든 대중적으로든 깊이 알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일본 이해의 첫걸음으로서, 요코다 고이치(橫田耕一)의 ‘헌법과 천황제’, 요시다 유타카(吉田裕)의 ‘쇼와 천황의 종전사’(이상 이와나미신서)를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두 책은 대단히 쉽게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천황제라는 난해한 문제를 이해하는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연숙(히토츠바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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