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호텔리어냐, 호텔이냐

  • 입력 2001년 4월 30일 11시 17분


매주 수·목요일 밤, 난 <호텔리어>에서 별세상을 구경한다.

시작부터 손지창 장모님께서 대박을 터뜨리셨다는, 그래서 “나도 언젠간 꼭 가보고 말테야”하고 꿈에 그리던 라스베가스 장면으로 기를 죽이더니 서울에 와서도 늘 환하고 우아하고 고상한 호텔에서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니까.

하지만 포장이 화려하면 알맹이가 부실한 법인가? <호텔리어>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려한 배경 속에 쟁쟁한 스타들이 나오는데도 별반 재미가 없다.

포장은 첨단을 달리는데 등장하는 캐릭터며 설정들은 한물 두물 다간 구닥다리다.

덜렁거리고 수다스럽지만 속마음은 여린 여자 주인공. 90년대 초반 장안을 달구던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전격 부활한 셈인가? 좍~ 빠진 몸매에 호텔 유니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송윤아의 덜렁이 연기는 연기자에게도 '어울리는' 역할이 있음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미스터 Q> 도도한 디자이너, <왕초>의 비련의 여주인공 역이 그렇게나 잘 어울리던 송윤아가 이번엔 종달새마냥 수다를 떨고 푼수를 떠는데…, 그게 귀여운 덜렁이처럼 보이질 않고 바보같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행태 또한 식상하다. 무뚝뚝하지만 속정은 깊은 김승우와 냉철하지만 아픔을 가진 배용준. 그야말로 극과 극인데 덜렁이에게 사랑을 느끼는 점에선 필이 통하나보다. 당직을 서는 여주인공에게 순대를 불쑥 던지는 '뚝-한' 남자의 구애와 장미 300송이를 보내는 잘 나가는 남자의 구애가 번갈아 이어지는데, 웬만하면 "우와∼부럽다. 우와∼넘 멋있다”는 탄성이 나올만도 하건만 피식 웃음만 나온다.

두 남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여주인공의 태도도 웃긴다. 정황으로만 보면 "그 여자, 복도 많네, 좋겠다!"고 시기질투하거나 "태도를 분명히 해라! 왜 두 남자한테 꼬리치냐!"고 분기탱천할 만도 하건만, "그냥 둘 다 너 가져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지만 안 그런 척 김승우 앞에서는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고, 너무 멋진 배용준 앞에선 머뭇머뭇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데 정말 코미디다. 주변에 그런 여자 있으면 정신 산란해서 어디 살겠나?

아무튼 <호텔리어>의 캐릭터와 사건들은 왕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독파하던 <하이틴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고 그래서 드라마에 빠져들 수가 없다. 그 얼마나 많이 읽었던 스토리인가? 겉으론 당당하지만 속마음은 여린 여자 주인공, 그 여자에게 큐피트 화살을 던지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 다른 데선 당당하지만 남자 주인공 앞에만 가면 실수 연발하는 여자 주인공. 결국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품에 달려들고…, 'THE END'.

아무리 라스베가스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호텔의 샹들리에가 화려한들 드라마는 이야기다.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없고 이야기꺼리가 빈약하면 포장의 화려함은 오히려 거품일 뿐이다. 드라마 <호텔리어>는 지금 현재까지 보여준 내용으로는 '호텔'일 뿐이다. 그 안에 살아 펄펄 뛰는 인간들의 이야기보다 호텔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오니까.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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