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까지는 날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고 했잖소!”
성난 왕자의 목소리에 공주는 마지못해 키스를 한다. 그러자 이번엔 공주가 애벌레로 바뀐다. 공주는 다시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웩! 애벌레랑 키스를? 그건 못해”다.
밤새 그렇게 티격태격 키스를 나누다 온갖 동물로 변신을 거듭하는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에는 달콤씁쓰레한 웃음이 숨어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구리왕자’의 동화를 패러디한 이 에피소드는 변덕스런 사랑의 실체에 대한 짖궂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5일 개봉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Princes et Princesses)는 그림자놀이를 원용한 실루엣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검정 도화지와 가위, 색전구 조명 등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묘사되는 그림들은 윤곽선만 뚜렷한 검은 그림자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총천연색 3D애니메이션 시대에 시커먼 그림자만 움직이는 ‘원시적’ 화면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싶지만 그런 단순함이 풍성한 상상력과 결합할 때는 환상적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공주의 마법을 풀어주기 위해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전 잔디밭에 흩어진 101개의 다이아몬드를 찾아야하는 왕자. 한 겨울에 열린 무화과 열매를 여왕에게 갖다받친 죄(?)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이집트 소년. 온갖 군대도 정복하지 못한 마녀의 성을 상냥한 마음 하나로 정복한 청년. 다리를 조이는 힘 하나로 도둑의 등에 업힌채 산천유람을 즐기는 일본노파.
한쌍의 소년, 소녀가 변신을 거듭하며 실을 잣듯 뽑아내는 6편의 에피소드는 어린이에겐 환상적 동화로, 어른에겐 유머 넘치는 러브스토리로 다가선다.
다채로운 문명을 넘나드는 예술적 향취도 만만치않다. 얼굴은 측면이지만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 벽화를 흉내내는가 하면 19세기 일본 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작품에 담긴 동양적 농담(濃淡)의 풍경을 구현한다.
아프리카 설화를 짙은 초콜릿빛 화면에 담아낸 <키리쿠와 마녀>를 만들어 역량을 인정받았던 프랑스 영화감독 미셀 오슬로의 두번째 장편애니메이션. 그의 작업은 미국의 디즈니, 일본의 재패니메이션, 영국의 클레이애니메이션에 맞설만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최고의 영화’에 뽑혔다. 전연령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