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다해 나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너에게 바쳐 너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네가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절절하면서도 담담한 부성애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 주인공은 중국의 유명한 번역문학가이자 예술사가인 부뢰(傅雷·1906∼1966). 그가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아들 부총(傅聰·67)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부총이 폴란드로 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1954년부터 저자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되는 1966년까지의 편지 110통. 아들 부총이 올바른 인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도록 혼신을 다했던 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백하게 펼쳐져 있다. 원서는 1984년 중국과 홍콩에서 동시에 출간돼 지금까지 10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스테디셀러.
부뢰는 부총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자 즉시 초등학교를 중퇴시키고 가정에서 직접 엄하게 가르칠 만큼 독특한 교육관을 지녔던 사람. 그것은 엄격함이었다. 부뢰는 부총이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인 자신 앞에서 장난을 못치게 했고, 식탁예절에서부터 밖에서 사람을 만나 지켜야 할 예절까지 일일이 가르쳤다.
부뢰는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아버지였다. 1966년 문화대혁명 발발 초기 홍위병들이 우익이란 누명을 씌우자 부인과 함께 자살해 무죄를 주장했을 정도였다.
여기 실린 편지엔 부뢰의 엄격하고 절제된 삶의 철학이 잘 담겨 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론적 지식은 쓸모 없는 것이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러면서도 “행동은 깊은 물을 만난 듯이,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해야 한다.”
그 같은 엄격함은 아들에 대한 진한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 사랑은 아들의 삶 곳곳에 섬세하게 배어 있다. “러시아어는 너무 빨리 읽지 마라. 너무 빨리 읽으면 잘 기억할 수 없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피아노 교육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모습도 인상적이다. 서양음악 잡지들을 뒤지고 그 속에 실린 글들을 번역해 아들에게 보내주었던 아버지 부뢰. 아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던 그였지만, “아들아, 나는 너를 학대하였다. 내 양심의 부끄러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영원히 너에게 미안할 것 같구나” 하고 토로하는 대목에선 독자들 모두 가슴이 찡해질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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