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토이, "10년뒤?아카데미 영화음악상 받을래"

  • 입력 2001년 5월 7일 18시 53분


2년만에 '토이'가 돌아왔다. '잠시 쉼'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페르메타'(Fermata)라는 제목의 5집을 들고.

토이 음악의 매력은 클래시컬하면서도 재즈, 록 등의 장르가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는데 있다. 수려한 스트링 연주와 다양한 퓨전 사운드는 '들으면 들을수록 맛이 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토이의 안주인 유희열은 92년 제4회 유재하 가요제 대상 출신 뮤지션. '내 마음속에' '바보같이' 등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시도한 1집(94)은 대중적인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음악적인 가능성은 인정받았다.

객원 가수제를 도입해 각양각색의 음색을 선보였던 토이는 2집(96)에서 빛을 발한다. 애잔한 김연우의 보컬이 돋보인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이나 정감있는 선율이 가슴에 와 닿았던 '흑백 사진'을 통해 유희열은 개성있는 토이의 음악세계를 그려 나갔다.

발라드 넘버 '바램'과 펑키 사운드를 가미한 '선물 파트 2'를 담았던 3집(97)에 이어 '구애' '여전히 아름다운지' '스케치북' 등 클래시컬한 멜로디를 담은 사랑 노래를 수록한 4집(99)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96년 객원가수 김연우와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활동하던 당시만해도 사진 촬영을 낯설어하던 그는 영화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5집 발매(10일)를 앞두고 7일 유희열을 만났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페르메타'의 마스터 CD를 들으며 새 음반, 음악 이야기, 그리고 토이의 미래를 들었다.

▼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새 음반을 완성한 소감은?

- 준비를 오래해서 그런지 떨리기보다 담담하다. 숙제 하나를 끝냈다고나 할까? 음반을 완성하고 난 뒤 내 음악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하게 된다. 냉정하고 잔인할 정도로. 하루는 '음 괜찮군' 하다가도 또 하루는 '이걸 음반으로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등 감정이 수시로 변했다. 아마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나 그림을 만드는 작업도 똑같을 것이다.

▼ 5집 '페르메타'라는 제목이 독특하다. 이번 음반에서 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 이탈리아 언어 중 아는 단어가 그것뿐이 없었다(웃음). 5집은 내 마음 속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담았다.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끝내고 싶은 마음과 나이가 들고 과도기적인 상황을 탈출하고픈 심경을 그렸다고나 할까. 그 속에서 잠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 이번 음반과 전작의 다른 점이 있다면?

- 18곡을 수록했는데 전작에 비해 연주곡이 많은 편이다. 쉬운 곡과 어려운 곡이 공존한다. 극단적인 분류라 할 수 있는데 코드나 곡 구성이 다소 난해한 편이다. 발라드곡이라도 화려함 대신 피아노 등 건반을 이용해 단순한 편곡을 택했고 가사도 수정 없이 투박하게 만들었다.

▼ 이탈리아의 너틸러스 스튜디오에서 명성있는 엔지니어인 안토니오 발리오니와 마스터링 작업한 성과물은?

- 우연히 윤상 선배와 함께 이탈리아 음악을 듣다가 사운드가 마음에 드는 음반을 발견했고 인터넷으로 수소문한 끝에 안토니오와 연락이 닿았다. 작업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탈리아가 우리와 비슷하게 댄스와 발라드 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어서인지 엔지니어도 한국 음악을 쉽게 이해했다.

▼ 어떤 식으로 노래를 만드나. 곡을 쓰는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 노래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자극으로 스타일을 분석해서 내 음악으로 만드는 것,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악상을 피아노 앞에 앉아 음으로 구체화하는 것, 또 하나는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직업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5분에 한곡을 만들기도 하지만 안될 때는 한달이 걸리기도 한다. 노래를 만드는 작업이 고통스럽고 힘이 든 과정이어도 괴로움을 극복하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

어려운 점? 쉽게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웅장하게 만든 곡보다 힘을 빼고 쉽게 들리게 쓴 노래를 사람들이 '좋다'고 느끼더라.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아이돌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최악의 상황이어서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내 스스로 음악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면서 노래 한곡 한곡에 매달리느라 고생이 정말 많았다.

▼ 5집에서 특별히 추천할만한 노래는?

- 이국적인 느낌의 연주곡 '페르메타'와 '컴플렉스' '첫사랑'을 권한다. 5집에서 구상한 감춤의 미덕이 반영된 곡들이다. 듣기에는 자극적이지 않겠지만 감춰진 음을 찾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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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음반에도 직접 노래를 부른 것으로 안다.

- '내가 남자 친구라면' '목소리' '미안해'를 직접 불렀다. 솔직히 나는 내가 부른 노래가 좋다. 가창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나의 한계에 맞게 잔잔하게 처리해서 그런지 계속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웃음). 기회가 된다면 객원가수 없이 내 목소리로 음반을 꾸며보고 싶다.

▼ 연주곡을 많이 담은 이유는?

- 연주곡은 음악 자체가 힘이어서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 가사와 목소리가 담긴 노래와는 차원이 다르다. 언어가 아닌 음으로만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작업이 어렵지만 행복하다. 타이틀곡 외에 그 음반에 수록된 연주곡을 들으며 대중이 새로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 고급스러운 사운드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클래식, 퓨전 재즈, 모던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는데 토이만의 개성은 뭔가?

- 뚜렷한 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고 결론은 다양함이 나의 스타일인 것 같다. 한 음악 선배는 "잡다한 게 희열이의 개성이고 그렇게 시도할 수 있는 게 축복받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다만 기존에 발표되는 노래를 들으며 고민을 하곤 한다. 과연 나라면 이 곡을 어떻게 그려낼까 하고.

▼ 멜로디 외에도 사랑, 이별, 외로움 등을 담은 노랫말이 좋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방법으로 가사를 쓰나?

- 거의 대부분이 내 이야기다. 이번 음반은 우울한 내용이 많다. 헤어지고 난 이후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처절하고 궁색한 이별을 다룬 것이어서 쓰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노랫말로 자꾸 드러나더라.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 지금까지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요즘은 스타일이 부재한 시대다. 저 사람만의 특별한 무엇을 느낄 수가 없다. TV에 나가면 획일화된다. 음반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상실된다고 본다. 음악이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방송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TV에 나가지 않는 뮤지션도 필요한 것 같다.

▼ 96년 2집 발표 당시 엔리오 모리코네 같은 영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영화음악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 영화 음악 섭외는 많이 들어왔지만 시기나 성격이 어울리지 않아 거절했다. 이젠 새 음반도 냈으니 영화음악은 물론 다른 가수 프로듀싱이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 볼 생각이다.

영화, 글, 사진 등에 관심이 많다. 좋은 문구에도 악상이 떠오른다. 5집 수록곡 '두 사람'의 경우 <화양연화>의 '두사람이 있었다'는 카피 문구를 보고 쓸쓸한 감정을 느꼈고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만든 곡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매력이 있고 음악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 새로운 음악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음악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연주음반을 담은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이 99년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는데.

- 그 책은 사실 놀면서 만든 것인데 의외로 대박이 났다(웃음). 낙서와 그림을 묶어 한달만에 녹음을 끝낸 음반을 묶어 냈을 뿐인데 좋은 반응을 얻어 쑥스럽다.

▼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음반은?

- 데뷔 앨범과 4집, 그리고 이번 앨범이다. 유희열의 색깔을 보여주려 애썼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앨범듣기 - 1집

  - 내 마음속에
  - 세검정

♬ 지난 앨범듣기 - 3집

  - 바램
  - 선물 Part II

♬ 지난 앨범듣기 - 4집

  - A Night in Seoul
  - 스케치북

▼ 토이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 예전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쩔 수없이 나의 제일 큰 부분이다. 유희열에서 음악을 뺀다면 껍데기만 남을 것 같아 무섭기까지 하다. 음악은 죽을때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고 따라올 동반자 같은 묘한 존재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음악에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 국내 뮤지션 중 함께 음악을 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 나의 우상인 조동익 선배를 비롯해 윤상, 박용준 등이다. 개인적으로 '루시드 폴'의 조윤석과 서태지를 좋아한다. 내가 못하는 것을 잘 하니까 멋있다.

▼ 요즘 즐겨듣는 음악은?

- 잠잘 때는 슈베르트나 드뷔시의 클래식 음악을 듣고 낮에는 일본, 독일의 알려지지 않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긴다. 일렉트로닉은 개인적으로 내가 잘 모르는 장르여서 관심이 많다.

▼ 여가 시간에는 뭐하고 지내나?

- 헬스 클럽에 다니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내 음반은 끝났지만 이승환, 윤종신, 김연우, 이소은의 음반 작업도 하고 있다.

▼ 지금 꼭 하고 싶은 일과 10년 뒤의 토이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 지금 당장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 친구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어설픈 사진도 찍으며 자유를 즐기고 싶다.

10년 뒤의 내 모습? 허황된 상상으로는 아카데미 영화 음악상을 받을 것이고 현실적인 상상으로는 교단에 서고 있을테지. 올해 대학 4학년(서울대 작곡과) 2학기에 복학할 생각이다.

▼ 앞으로의 계획과 음악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7월에 객원가수들과 토이 콘서트를 열고, 가을 께 피아노와 현악 팀과 소극장 공연을 준비할 예정이다.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닭살 돋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고맙고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많이 즐겨주길 바란다.

유희열은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면서 "음반을 내는 것이 한편의 풍경화를 벽에 거는 느낌"이라며 "6장의 음반을 낼 때마다 하나 하나 자신의 성과물들이 쌓여가는 것이 희한하다"고 말했다.

헤어지면서 그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면서 "많은 음악 작업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도 맛봐야 진정한 공부가 되지 않겠냐"며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토이의 '전시회'가 비로소 시작된 느낌이었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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