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요즘 맥주 광고에는 맥주가 없다. 젊은이들의 웅성거림과 스포츠카의 굉음은 있어도 맥주는 없다. 있다고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요즘 휴대전화 광고에는 휴대전화기가 없다. ‘행복하니?’라는 뜬금 없는 물음이 괴상한 화면 위로 메아리칠 뿐 휴대전화기는 없다. 있다고 해도 끝에 아주 조금 있다.
요즘 광고는 ‘제품’을 광고하지 않고 ‘이미지’를 광고한다. 예전의 광고가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광고했다면, 요즈음 광고는 이미지 자체를 광고한다.
프랑스의 이론가 보드리야르는 위와 같은 변화를 ‘시뮬라시옹’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예전의 이미지들은 실재하는 대상과 대체로 연관돼 있었다. 예컨대, 그리스 회화에 등장하는 말의 이미지는 광야를 달리는 실재하는 말과 연관돼 있다.
그런데, 요즘의 이미지들은 실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독립해 이미지만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실재하는 대상과 관련 없다. 그 이미지는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가상적 대상이다. 예전처럼 이미지가 실재와의 연관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자체적으로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낸다.
오랫동안 실재하는 대상에 종속됐던 설움에서 벗어나 이미지는 이제 독립을 쟁취했다. 그렇지만, 이미지는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미지는 자신이 섬겼던 실제 대상을 정복하고 자신이 실제 대상인 듯 행세한다.
컴퓨터 게임 중독에서 종종 나타나듯이 이미지의 세계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 우리들은 실제 현실을 망각하고 이미지의 세계를 실제 현실로 삼는다. 실제 대상이나 세계가 가상적 이미지에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미지의 지배가 무한정 계속되지는 못한다. 도처에 이미지들만이 가득 차게 되면, 우리들은 이미지의 가상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실재의 세계를 체험하고 싶어한다. 컴퓨터 축구게임인 ‘FIFA 2001’에 열중하다 보면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그 순간 거리로 나가 달리며 땀을 흘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제품을 직접 등장시키는 광고보다 보일 듯 말 듯 등장시키는 이미지 광고가 제품 판매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제품과 연관 없는 이미지만이 가득 차게되면 실제의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픈 욕망이 더 들기 때문일까. 일상의 묘한 지혜 같기도 하고 시장의 현란한 놀이 같기도 하다.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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