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정 요구의 원칙〓정부는 문제의 우익 교과서를 검토한 결과 일본역사를 미화하기 위한 한국사 폄훼,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 회피 또는 전가 등이 기존의 7종 교과서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객관적인 역사기술이 아닐뿐더러 인류의 평화공존이나 한일 우호친선을 저해한다고 단정했다.
정부는 그 판단의 근거로 한일공동선언과 일본 스스로의 약속 및 사과, 국제규범인 유네스코 권고안 등 9개의 자료를 들며, 이를 재수정 요구안에 첨부시켰다.
35개 재수정 요구 항목은 △사실과 기술에 오류가 있거나 △해석과 설명이 왜곡됐거나 △내용이 축소됐거나 누락된 부분으로 구성됐다. 정부는 항목 선정을 위해 국사편찬위원회 등 전문가를 동원해 문제점을 집중 검토했으며, 교과서에 실린 사진 지도 삽화의 설명까지 꼼꼼히 살폈다. 일본 정부가 고치지 않을 수 없는 항목만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재수정 요구의 핵심〓정부는 우익 교과서 역사인식의 문제점으로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 누락 △피해국을 모독하는 가학사관(加虐史觀) 등 9가지를 들었다.
검토작업에 참여한 국사편찬위원회 강영철(姜英哲) 편사부장은 “왜곡된 일본 역사교과서를 한두 곳 고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일본의 근대역사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일관된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했다.
정부는 당초 재수정 요구를 우익교과서만 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교과서문제는 일부 특정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점을 대내외에 인식시키기 위해 기존 7종 교과서의 문제도 함께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대일 압박수단〓정부 당국자는 “일본정부는 재수정 요구안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신임 일본총리의 조치를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측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한일 양국 차원은 물론 국제무대에서의 단계별 대응전략을 세워두었다.
정부는 우선 각 부처가 추진 중인 한일협력사업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첫 조치로 6월초로 예정된 2차 한일 해군간 공동수색·구조훈련을 연기시켰다. 일본음반 직수입 보류 등 대일 문화개방 일정 연기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2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외무장관회담에서 일본측에 재차 강력한 시정요구를 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엔 인권위 등 교과서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국제회의에서는 빠지지 않고 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국제여론을 통한 압박작전을 구사할 방침이다. 일본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일본을 ‘국제적 왕따’로 만드는 전술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한일간 민간 차원의 교과서 불채택운동을 벌이고, 총리실 등에 ‘역사왜곡 시정 및 한국 바로알리기 사업’을 전담하는 상설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영식·부형권기자>spear@donga.com
▼정부가 택한 '비망록형식 문서'▼
정부는 8일 비망록(Aide―Memoire) 형식의 외교문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안을 전달했다. 비망록 형식이란 상대국 대표에게 외교문제에 대한 자국 입장을 구두로 설명하고 그 내용을 다시 문서로 만들어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문서의 형식은 비망록 외에 구상서(口上書·Note Verbale), 논 페이퍼(Non―Paper)가 있다. 구상서는 문서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질의, 통고, 의뢰 때 사용되며 서신교환과 같다. 논 페이퍼는 백지에 메모하듯이 자유롭게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외교문서로서의 비중은 떨어진다.
정부가 비망록 형식을 택한 것은 재수정 요구를 더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 말로 설명할 때 혹시 빠진 것이 있다고 해도 문서가 있기 때문에 주요 내용이나 의도가 빠질 수 없다. 정부는 82년 역사교과서 파동 때도 비망록을 이용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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