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이창호 9단(흑)과 이세돌 3단(백)이 제5회 LG정유배 도전기를 두고 있다. 2대0으로 앞서있는 이 3단이 이날 대국에서 이기면 우승하기 때문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검토실은 북적북적하다. 검토실 한켠에서 유창혁 최규병 9단, 최명훈 7단, 김명완 5단 등이 머리를 맞대고 검토를 하고 있다.
A〓아직 세돌이가 유리한 것 같은데요.
B〓응, 세돌이가 중앙 백 ○ 석 점을 키워 죽인 게 헤펐지만 창호가 몇 집 부족해.
C〓세돌이는 석 점을 죽인 대신 선수를 잡아 우변을 지키면 이긴다는 생각 같아요.
D〓(장면도를 가리키며)백 1로 우변을 잡았는데요.
B〓거기? 좀 작지 않나. ‘가’로 둬야할 것 같은데.
C〓세돌이가 흥분한 것 같다.
A〓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몸을 사린 것 같은데요.
C〓세돌인 평소 20초 초읽기 바둑도 잘 두는데 왜 그러지.
B〓이 사람아, 연습바둑하고 같나. 막상 큰 바둑에서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면 머리가 멍해져 판단이 안 선다니까.
A〓흑 2가 절묘한 응수타진이네요.
B〓(이리 저리 변화도를 그려보더니) 좌변에 잡힌 흑 돌의 뒷맛 때문에 3으로 참을 수밖에 없네.
C〓흑 4가 2에 이어 기막힌 연타(連打)인데요. 백이 곤란해졌네요.
A〓이런 식으로 창호에게 당한 사람이 한 두 명이어야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여지없다니까.
B〓어, 근데 5는 뭐고 7은 뭐냐. 여긴 ‘나’로 날 일자 행마해야 되는 것 아냐.
C〓그게 좋아 보이네요. 형 감각도 아직 녹슬지 않았네요.
A〓에구, 8로 상 중앙 백 돌이 몽땅 흑의 수중에 들어가서 완전 역전인데요. (꼼꼼히 계가를 해보더니) 흑이 15집은 남는 것 같아요.
B〓모레(17일) 다시 여기 와야겠다.
(20분 뒤 7집 반을 진 이세돌 3단이 검토실로 들어온다)
B〓세돌아, 복기 한번 해볼까.
이 3단〓아유, 좀 봐주세요.
C〓근데 세돌아, 아까 거기(장면도 1)는 실수아냐.
이 3단〓계시원이 ‘아홉’하고 초읽기를 부르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B〓(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너 오늘은 꽤 장고하더라. 평소 너답지 않게.
이 3단〓그러니까 다음 판엔 평소처럼 속기로 둬야겠어요.(웃음)
(이 때 이 3단의 팬이라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검토실에 들어와 ‘다음 판에 꼭 이기라’며 하얀 백합꽃다발을 건넨다. 이 3단은 얼굴이 빨개지며 꽃다발을 받는다.)
C〓세돌인 좋겠다.(모두의 웃음 속에 검토실은 파장 분위기가 된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