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칸영화제]모레티 감독과 그의 작품세계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37분


<아들의 방>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난니 모레티 감독은 연기와 연출 능력을 겸비해 종종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과 비교된다. 모레티와 베니니는 같은 이탈리아 출신.

모레티의 ‘아들의 방’은 공교롭게도 1998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인생은 아름다워’와 마찬가지로 눈물나는 부정(父情)을 그린 작품. 감독이 작품속에서 모두 아버지를 연기했다는 점도 일치한다.

베니니 감독이 이탈리아의 희극적 전통을 잇고있다면 모레티 감독은 매서운 정치적 비판과 풍자의 전통을 지켜왔다. 이 때문에 베니니를 찰리 채플린에 비교한다면 모레티는 우디 알렌에 가깝다.

모레티는 데뷔작인 ‘나는 자급자족한다’(1976년작)에서 68세대의 분노를 그렸고 1994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일기장에게’(Caro Diario)는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이탈리아 좌파의 몰락이 남긴 상처를 더듬어냈다. 1998년작인 ‘4월’은 이탈리아 정치사와 자신의 가족사를 교차시킨 민감한 내용으로 이탈리아 언론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력을 살펴볼 때 ‘아들의 방’은 의외라고 할 만큼 탈(脫)정치적인 작품.

북부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안코나에 사는 정신과 의사 지오반니(난니 모레티)는 사랑하는 아내와 남매를 두고 단란한 중산층 가정을 꾸려간다. 그러나 아들 안드레아가 스쿠버를 하던 도중 익사하자 남은 가족들은 깊은 상실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영화는 갑작스런 재앙이 화목한 가정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고가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아들의 관에 나사가 박힐 때 신경을 자극하는 음향이나 아들을 잃고 다른 정신질환자들의 시시콜콜한 고민을 상담해줘야할 때의 지오반니의 표정 등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농밀한 슬픔을 보여준다.

모레티 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죽음일수도 있지만 내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가족 또는 이웃의 죽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레티 감독은 ‘아들의 방’에서 고통의 늪에 빠진 주인공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안드레아의 여자 친구를 만난 지오반니 가족은 마치 안드레아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그녀를 환대하며 잔인한 운명과 화해하는 것.

현지 언론들은 “모레티가 자신의 재능에 빠진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할 줄 아는 완숙한 대가(大家)로서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찬사를 내놓았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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