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은 누구인가〓이들 초·재선 의원들은 자신들이 거론한 ‘비공식 라인’에 대한 공개적인 설명을 삼가고 있지만, 주변인사들은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을 겨냥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동수(安東洙) 전법무부장관 인선에 권 전최고위원이 개입했다는 증거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들 의원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최고위원측은 “국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고 있다.
초·재선 의원들이 주장하는 청와대 쇄신론도 비슷한 경우이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 등 동교동계 인사들로 보이나, 이들 또한 안 전장관 인선과 직접 결부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는 데 부담을 느낀 이들이 우회적으로 참모진을 타깃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한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를 쇄신 대상으로 지목하긴 했어도 김 대표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차원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초·재선 의원들은 이번 인선 파동의 실제 책임자(대통령과 공식라인)와 쇄신 대상간의 괴리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답답한 청와대〓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7일 “그들이 청와대를 쇄신하라고 하는데 그럼 그 사람들이 배지 떼고 청와대로 올 수 있느냐”며 격앙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당내 개혁파 의원들로 물갈이할 경우 청와대 직원들은 당적을 가져서는 안되므로 먼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과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이처럼 당정 쇄신을 한다 해도 대안이 될 만한 인물들이 여권 내에 별로 없다는 점은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초·재선 의원들 모두가 고심하는 문제. 개혁 성향이면서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출 수 있고, 그러면서도 정치를 잘 아는 원외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권 내 세 갈래 흐름〓당정쇄신 요구가 등장할 때마다 여권 내에는 대체로 △권력핵심주체를 바꾸자는 근본 개혁론(초·재선 참여파) △정권창출세력과 정권참여세력의 조화로운 공생을 주장하는 중도 개혁론(중도 관망파) △정권창출세력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적자론(동교동계)의 세 갈래 기류가 형성된다.
그 중 주로 근본 개혁론자들과 적자론자들간의 갈등으로부터 여권의 집안싸움이 빚어져 왔고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누가 권력을 만들었는데…”라며 초 ·재선 의원들을 경계하고 있고, 초·재선 의원들은 동교동계 인사들을 ‘역량이 모자란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김 대통령에 대한 정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동교동계가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인다면, 초·재선 의원들은 김 대통령 개인보다는 개혁의 성공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김 대통령이 한발 물러설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부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 파동은 이같은 시각의 차이뿐만 아니라 ‘김 대통령 이후’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도 한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대선 후보 경선 시기가 다가올수록 민주당 내 여러 정파나 세력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이로 인한 파열음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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