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남들이 늦둥이라고 부르는 철이는 윤씨가 낳은 아들이 아니다. 윤씨가 88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다른 곳으로 입양될 아이들을 잠시 맡아 키우는 위탁모 역할을 할 때 만나 입양한 아이. 철이는 윤씨의 5번째 위탁아였다.
두살이 넘도록 목을 가누지 못하고 우유를 먹이면 흘리는 게 반이 넘던 철이. 뇌성마비 장애아 철이는 윤씨가 기르던 1년여 동안 국내입양이 거부돼 결국 90년 해외입양을 기다리며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철이가 떠난 뒤 윤씨는 앓아 누웠다. 장애아여서 더욱 정성을 쏟았던 아이. 결국 이들 부부는 아이를 찾아 나서 수소문 끝에 경북 경산 모보육원에 철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을 찾아가 철이를 본 순간 윤씨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나마 통통했던 볼은 쏙 들어가고 궁둥이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다. 귀가한 윤씨는 다시 자리를 펴고 누웠다. 말 한마디 못했지만 또렷한 눈빛으로 자신을 애처롭게 쳐다보던 철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입양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남편의 월급으로 두 아들의 학비를 대기도 빠듯한 가정 형편을 고려하면 입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윤씨의 마음을 헤아린 듯 남편 홍씨가 먼저 “데리고 오자”고 했다. 철이가 덮던 이불에 코를 박고 ‘보고 싶다’며 울던 두 아들도 대환영이었다.
90년 7월 30일. 철이는 드디어 윤씨의 아들이 됐다. 호적에는 양자가 아닌 친자로 올렸다. 그리고 홍씨 족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철이는 지금 연세대 의대 부설 재활학교 5학년. 학교를 같이 오가면서 윤씨는 24kg 나가는 철이를 차에 태울 때, 화장실에 갈 때 등 하루에 모두 11번을 안아야 한다. 50세를 앞둔 윤씨에겐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윤씨는 즐겁다.
“한 때는 ‘철이가 복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나 자신이 교만해진 거죠. 하지만 요즘은 ‘복 많은 사람은 나’라고 확신해요. 철이가 없었으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화목해지진 않았을 거예요.”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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