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정대성/일 교과서 감정적 대응 안된다

  • 입력 2001년 5월 29일 18시 37분


5월 19일 서울대 경영대 국제회의실에서 한일민족문제학회 주최로 양국 지식인들의 토론이 열렸다. 토론 주제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였다.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에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으로서 이번 모임을 통해 느낀 점이 많다.

필자는 일본에서 줄곧 교육받았다. 당연히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에 관한 객관적인 지식을 얻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한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마침 역사교과서 문제가 한·중·일의 외교적 사안으로 떠올라 자연스럽게 민족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동안 양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본 역사교과서는 상당부분 개선되어 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역사교과서' 가 나오면서 동아시아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주장은 견강부회 투성이고 한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이 일본 사회 내에서 상당한 '힘' 을 발휘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결코 무시나 감정적 대응으로 대처할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 를 비롯한 국내 신문사의 일본어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연일 일본인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 중에는 욕설이나 차별어(差別語)까지 보인다. 그런데 한국인 가운데에도 논리적 토론보다는 사이버 테러 등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다.

이번 토론회의 취지는 양국이 감정적 충돌을 넘어서 이성적 대화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한 일본인 참석자는 양국간 토론 활성화를 위해 양국의 각계각층 인사가 참석한 TV 공개토론회를 동시 방영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민간 차원에서의 토론 활성화가 양국의 골을 좁히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한국은 일본 우익의 논리를 격파할 수 있는 논리를 시급히 구축하면서 동시에 일본 내에서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재일한국인 후배들이 배우고 있는 교실을 먹구름으로 덮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양국 간의 문제도 해결의 기미를 보일 것이다.

정대성(서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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