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진현/북-미 대화 기대는 하지만…

  • 입력 2001년 5월 29일 18시 37분


26, 27일 미국 하와이에서 개최되었던 한·미·일 대북정책 조정그룹(TCOG) 회의의 결과는 한국정부에게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미국은 한국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남북문제에 있어 김대중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재천명하였다. 또 북한과 조건없이 대화를 재개할 의사도 표명했다.

▼원점서 시작…험로 예상▼

그러나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와 별도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해 나름대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나 한국정부의 시각과는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북한을 보는 시각이다.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 정권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로 보고 북한과 합의는 철저한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도 북한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모든 것을 선의에 맡긴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상대를 믿고 의도를 한번 시험해보자는 입장이었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에 진행되었던 미사일 협상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의구심에서 출발, 합의의 이행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는 과정을 통하여 북한의 변화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위협이나 억지를 보상을 통해 달래는 식으로 대처해 왔다고 보고 이런 방식은 앞으로 결코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북한 핵위기가 경수로 제공으로 이어지고 대포동 미사일 위기가 북미관계 개선을 약속한 페리 프로세스로 이어지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되 긍정적 행동은 보상하는 절제된 접근방식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방식이 현실에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과거와는 분명히 차별되는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입장 차이는 구체적인 정책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가령, 북한 미사일과 관련, 부시 행정부는 검증부분이 미흡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협상 성과를 수용하기보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뜻을 밝혔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제네바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기본입장은 표명했지만 여전히 합의의 '개선'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가 미래의 숙제로 남겨두었던 북한의 과거 핵문제를 제기한 것은 핵문제의 철저한 해결을 중시하는 부시행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의 실질적 감소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북미간 대화가 재개되어도 결코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작년 말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협상 당시 북미 양측이 도달했던 그 지점에서 재개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 더욱 엄격한 기준 하에서 여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과정에서 만약 북한이 과거와 같은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면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한미공동 대북전략 찾아야▼

머지않아 남북정상회담 개최 1주년을 맞는다. 현재 남북관계의 모습은 1년 전의 기대와 열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것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라고 북한은 주장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그런 시각이 있지만 이는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은 북미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성사되었고, 북미관계가 급속히 진전되었던 작년 하반기부터 남북대화는 이미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이 최근 남북대화에 소극적인 것은 우리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전력을 비롯한 경제지원을 얻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을 남북대화를 기피하는 구실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남북대화의 걸림돌이라는 식의 그릇된 시각이나 북미대화만 재개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미양국간 북한을 보는 시각을 조율하고 공동의 대북전략을 찾아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백진현(서울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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