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E&B클럽]'우리 교육 현장' 좌담

  • 입력 2001년 5월 29일 19시 21분


왼쪽부터 이지영, 손미선, 김유진, 최정숙, 추은영씨
왼쪽부터 이지영, 손미선,
김유진, 최정숙, 추은영씨
《동아일보 ‘주부 E&B(Education & Breeding)클럽’이 발족한지 40여일. 서울 및 수도권에 사는 주부 E&B클럽 회원 7명은 매주 수요일 동아일보 에듀메트로면을 통해 생생한 교육현장의 목소리와 다채로운 정보를 전달해 왔다.

주부 E&B클럽은 최근 동아일보사 14층 회의실에서 ‘조기 영어교육’을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김유진 손미선 이지영 최정숙 추은영씨(가나다 순)등 5명이 참석. ‘아이 키우기 프로’답게 매섭게 교육현실을 짚어냈다. 교육당국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회원들은 오전 11시부터 낮 12시반까지 좌담, 그리고 식사시간의 자유발언….

이것도 모자라 “우리끼리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1시간 이상 서울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회의’를 하기도 했다. 연장자인 최정숙씨가 자연스럽게 사회를 맡았다.》

▽최정숙〓모두들 돌아가며 귀한 동아일보 지면에 글을 썼는데 주위의 반응이 어땠나요. 전 우리 동네(인천)에서 유명인사가 됐어요.

▽손미선〓인터넷 어린이 영어교육 동호회에 관한 글을 쓴 뒤 엄마들의 반응에 놀랐어요.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e메일을 수십통이나 받았어요. 아직까지 답장해주느라 정신 없네요. 용인시 수지지역에는 제 글을 보고 만든 동호회도 몇 개 생겼대요.

▽김유진〓영어유치원에 대해 썼는데 관심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어요. 어떤 분은 “돌려 말하지 말고 어느 영어유치원이 좋은지 ‘콕 찍어’ 얘기해 달라”고 다그쳐 당황했어요.

▽최〓혹시 옛 애인한테 연락 받은 분은 없나요?(일동 웃음) 영어교육에 관심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에서도 어린이 영어교육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이지영〓같은 생각입니다. 영어유치원이다, 어학연수다, 조기유학이다, 교육이민이다 해서 영어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가 많지만 다들 외국으로 떠나면 이 땅엔 누가 남겠어요.

▽손〓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신도시엔 여름방학 때 단기 어학연수를 가려는 학생이 엄청나게 많아요.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도…. 유치원생이 미국, 영국에 가려면 3∼4주에 400만∼500만원, 부모가 함께 가면 1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해요. 자칫 박찬호 야구경기나 보고 오기 십상이에요.

▽추은영〓상대적으로 조숙한 우리 아이들이 어학연수를 가 미국 애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오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고 해요. 어학연수나 조기유학이나 적어도 10세는 넘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아예 이민을 갈 거면 모르지만 결국 국내에 돌아와 ‘써먹기’ 위해서라면 조기유학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5학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적응을 못해 다시 이민절차를 밟고 있어요.

▽김〓맞아요. 아이를 유학 보낸 학부모들은 언제 애들을 데려오느냐가 고민이에요. 미국에 가면 우리 아이들은 ‘스타’가 된대요. 영어만 못할 뿐 셈 잘하지, 운동 잘하지, 똘똘하지…. 태권도 시범을 보이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환호한대요. 그러다 귀국하면 보습학원을 몇 개씩 다녀야 하는 암담한 현실이 기다리니….

▽이〓옆집 아이는 일찌감치 외국에 갔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왔는데 적응을 못해 부모가 국어책에 일일이 끊어 읽기 표시를 해 줄 정도예요. 결국 대학은 영어만 잘 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에 특례입학을 했지요. 조기유학은 보내도 걱정, 안 보내도 걱정인가 봐요.

▽최〓법적으로 유치원생들도 어학연수나 조기유학을 갈 수 있나요?

▽모두들〓(별 걱정 다 한다는 듯) 아이 장래가 걸린 문제인데 곧이곧대로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최〓꿩 대신 닭이라고 외국의 가정집에 머물면서 영어를 배우는 ‘홈스테이’는 어때요? 제 시누이는 아이와 함께 필리핀에 간 적이 있어요. 시누이는 필리핀 애들을 모아 수학을 가르치고 아이는 영어를 배웠다나요?

▽손〓아이 혼자 가는 경우엔 문제도 많아요. 귀하게만 키운 아이가 말도 안 통하는 남의 집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죠. “집에 가고 싶어…”라며 울면서 전화하는 애들도 많아요. 홈스테이도 일종의 문화외교인데 잘 가르쳐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김〓필리핀 하니까 생각나는데 영어유치원을 고르는 엄마들이 ‘발음’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아세요? 분당의 한 영어유치원은 호주 선생님을 들였다가 무척 후회했어요. 정통 발음이 아니라고 썰물처럼 빠져나갔거든요. 만약 필리핀 선생님이었다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거예요.

▽이〓발음뿐만이 아니에요. ‘어디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앞뒤 재지 않고 옮기고 보자는 엄마가 많아요. 다른 아이들이 다 옮기는데 혼자 남아있을 수 있겠어요?

▽추〓엄마들이 불쌍해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고 ‘운전사’ 역할만 하는 엄마들 말이에요. 강남에 가보세요. 과학교실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수영장 등의 주차장엔 애를 데려다주고 대기 중인 ‘엄마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김〓아빠들도 불쌍한 건 마찬가지예요. ‘교육별거’라는 말도 있잖아요. 엄마랑 애는 미국 가고, 아빠는 돈 벌어 보내고. 아이 교육이 가정의 유일한 목표인 것 같아요. 행복하게 산다는 게 뭔지….

▽최〓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추〓공교육이 문제죠. 학교에선 가르치지도 않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허다해요. 학원에 다니라고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죠. 시험만 잘 본다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게 하겠다고 도입한 ‘수행평가’가 교육을 더 망치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해요.

▽손〓초등학교에선 꼭 점수를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다른 애들보다 점수를 못 받으면 기가 죽으니까…. 정말 ‘열 받는 건’ 능력 없는 선생님들이에요. 아이들은 컴퓨터교실에 다니는데 학교 선생님 가운데는 ‘컴맹’도 많아요.

▽추〓잘못된 교육정책도 장관 옷 벗기기로 끝내면 안되죠. 정책 입안자를 해임하는 데 그치니까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수시로 오락가락 하는 거 아니에요?

▽최〓만약 주부님들이 장관이라면 어떻게 풀어나가시겠어요? 먼저 손 장관님.

▽손〓교육대나 사범대 출신이 아니라도 능력이 있으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교직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의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보세요. 양질의 외부강사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하면 추첨까지 할 정도로 아이들이 몰려요.

▽이〓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아이들(4, 5세)을 어린이집 보내는 것말고는 특별히 돈 들여 가르치지 않아요. 하지만 솔직히 이 소신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자신이 없어요.

▽추〓영어단어 하나 잘 외우는 것보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교실청소에 열심인 ‘기초가 튼튼한’ 아이들이 더 대우받는 학교를 만들어야죠.

▽최〓전 학부모들도 적극적,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들이 기부금을 내는 정도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학교 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등을 통해 주체적으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 나가는 자세가 아쉬워요.

▽김〓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역시 부모가 아이를 잘 알고 있어야 분위기에 휩쓸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시킨다는 것과는 또 다른 거죠.

<정리〓정경준·이호갑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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