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정착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 중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의약계가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약속 위반이다. 자유시장 경쟁의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약계는 “주사제의 분업 제외는 원칙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각각 주장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대책의 큰 골격〓정부가 최근 밝힌 올해 보험재정 적자 규모는 4조1978억원. 현재 9189억원의 적립금이 있으므로 순적자는 3조2789억원인 셈이다. 정부는 지역의보에 대한 국고지원을 현행 27%에서 50%로 높이고 감기 등 가벼운 질병의 경우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올리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보험재정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31일 발표할 계획이다.
이 중 치매 뇌졸중 중증정신질환 등 만성질환 노인을 위한 ‘노인요양보험’ 도입 및 장기요양시설 대폭 확충, 난치병 등 중증질환자의 본인부담 경감 등에 대해서는 의약계 모두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주사제 분업 제외,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재분류 등 몇 가지 방안의 경우 의약계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의약계의 반발 이유〓대한의사협회 김세곤(金世坤) 공보이사는 “모든 주사제의 분업 제외는 올 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합의된 내용으로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은 수가 인하를 노린 것으로 약속 위반이며 여기에 기준 이상의 환자를 진료할 경우 수가를 낮추는 차등수가제까지 도입되면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등의 경우 수가 인하폭이 20%나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차등수가제는 자유시장 경쟁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
의료계는 또 현행 40% 수준인 일반 의약품의 비율을 늘리는 문제와 관련해 “환자가 아프면 약국으로 먼저 가라고 유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면서 정부의 대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질병별 포괄수가제 도입도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반면 약계는 의료계가 보험재정 파탄에 크게 일조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대한약사회 신현창(申鉉昌) 사무총장은 “주사제를 분업에서 모두 제외하는 것은 분업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 처방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특허 제품의 경우 상품명을 쓸 수밖에 없지만 상당수 카피(복제) 품목의 경우 성분명으로 처방해야 하며 일반 의약품 비율을 60% 수준으로 올려야 고가약 처방을 막고 보험재정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사무총장은 “차등수가제 도입은 상당한 명분이 있으며 대신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고 만성 질환자가 처방전을 반복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전망〓김원길(金元吉) 보건복지부장관은 “건강보험 각 주체가 공동으로 재정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국고 지원을 약속하고 환자의 본인부담금도 올릴 테니 의약계도 보험재정 안정을 위해 불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약계는 정부 태도를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보험재정 파탄 이후 국민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또 감사원 특감 파문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나섰다가 자칫 제몫만 챙기려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몰매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6월 3일 전국의사대회를 열어 힘을 과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고 약사회도 정부 정책에 ‘순종’만 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한바탕 파문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