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걸터앉아 카탈로그를 뒤적이는 이현우. 발을 까딱거리며 자신의 곡 '너의 의미'를 허밍으로 웅얼거린다.
그의 발에는 분홍색, 파랑색의 짝이 다른 곰돌이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적당히 흐트러진 모습을 깜찍한 소품으로 살려낸다.
'난 사는 방법이 달라. 정해진대로 사는건 재미없잖아'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소견을 말하는 듯 싶지만 뒤로 가면 이 의미는 가볍게 변주된다. 산다는게 물건을 산다는 이중적인 뉘앙스로 쓰인 것이다.
거실로 스윽 걸어가는 이현우. <코리아 텐더>에 전화를 걸어 비어있는 거실공간을 자신이 원하던 물건으로 하나씩 채워간다.
에어컨, 운동기구, 쇼파, 컴퓨터…. 물건도 가지각색이다.
걸어갈 때 물건이 배경처럼 깔리는 연출방법이 상당히 재미나다. 이 기법은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패러디했다.
에드워드 노튼이 쇼핑 중독증에 걸려 거실에 빼곡하게 물건을 사들일 때 사용된 것. 이 독특한 장면은 물체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모션컨트롤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광고의 마지막에선 이현우가 "싸게 사면 좋잖아요"라고 무덤덤하게 내뱉으며 특유의 '어리버리'한 웃음으로 맺는다.
<코리아 텐더>는 소비자들이 직접 가격을 적어 입찰하는 쇼핑방식이다. 그만큼 소비자의 참여도가 높고 적극적인 쇼핑형태다.
이렇게 발빠른 쇼핑방식에 느려터진 이현우가 모델이라니 원. 따지고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핑가이드로 적역이다. 도회적이지만 고독한 예술가 이미지에 플러스 되는게 그의 자유로운 삶의 형태.
이현우가 여기에서 값비싸게 파는 것은 다름아닌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의 여유로운 삶을 변주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는 소비중독의 위험함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연막을 치는 존재다. 이 광고는 (물건) 사는 방법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모습도 달라진다는 듯 말하고 있다.
물질이 생활을 서서히 지배해가는 단적인 예다. 모델 이미지란게 이래서 참 중요하다. 이현우는 쇼핑을 생활의 질을 한차원 높이는 고급한 행위처럼 보이게 유도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건 시청자들이 그가 살아가는 스타일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음료 <쑥의 향기> 광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직접 찍었다.
주거공간마저 광고에 그대로 쓰일 만큼 감각이 '파닥파닥' 살아숨쉰다는 거다.
"어, 외롭다" 하고 외치는 것 좀 봐라. 그것마저 폼난다.
토크쇼에 나와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철딱서니가 없어 보인다. 아직 꿈을 꾸고 있다. 걸핏하면 반달곰을 살리자고 한다 핫. 몽상가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픽, 웃다가도 사실은 자신 역시 은연 중에 그렇게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걸 깨닫게 된다.
여자들의 욕망은 좀 더 은밀하다. 그것은 '같이 살고 싶다'는 위태로운 욕망에 가깝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둔갑시키는 그만의 넉넉한 스타일을 함께 공유하길 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싱글을 위한 이지쿠킹' 같은 요리책 아이템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는 충분히 일상인이면서 은둔자의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현우를 보면 우울하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오죽 약삭빠르면 이 어눌한 느림보 스타일을 동경하기에 이르렀을까 하고.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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