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만의 봄가뭄 현장]곳곳서 기우제…공업용수 양보

  • 입력 2001년 6월 1일 18시 28분


'비를 내리소서'
'비를 내리소서'
30여년만의 봄가뭄. ‘메마른 천심(天心)’에 농심(農心)이 갈가리 찢어진다.

올 봄 들어 계속되고 있는 유례없는 가뭄. 이달 중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농민들의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전국 곳곳에서 ‘단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열리고 실의에 빠진 농가에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한 제지업체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인심(人心)은 무심치않다’〓1일 오전 충북 청원군 강외면 쌍청 상정 만수 연제 호계리 들녘. 그 어느 곳보다 가뭄이 심한 곳이지만 지난달 중순 모내기를 마친 논에서는 찰랑찰랑 물이 넘친다. 파릇파릇한 모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같은 때아닌 ‘물풍년’은 병천천 주변 쌍청 양수장 인근에 있는 대한제지와 팬아시아 페이퍼 등 두 제지회사의 따뜻한 배려 때문.

대한제지는 지난달 중순 하천이 마르자 5000만원을 들여 2㎞가량 떨어진 미호천까지 지하수로를 뚫었다. 수중모터를 이용해 양수장에 물을 가득 채웠다.

이 양수장 물을 사용하는 인근 팬아시아 페이퍼는 아예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주변 농지에 충분한 물을 대주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지난달 14일부터 24일까지 공장 가동을 멈춘 데 이어 가뭄이 계속되면 4일부터 14일까지 다시 기계를 세울 계획이다.

울산 울주군 온양읍의 LG화학 울산공장도 자체 개발한 공업용수를 지난달 12일부터 매일 1000t씩 펌프로 뿜어올려 인근 농경지 2만여평에 공급하고 있다. 회사측은 가뭄을 대비해 지난해 인근 논과 밭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관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생수회사들도 발벗고 나섰다.

강원지역은 전체 82%가 산간지역. 간이상수도 시설이 많아 주민들은 가뭄 때면 심한 식수난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보다못한 해태음료와 태백산산수음료 등 도내 6개 생수업체는 춘천 화천 삼척 영월 등 4개 시군 2500여가구에 지난달 27일부터 생수 1.8ℓ짜리 6만여병을 공급해주고 있다.

▽‘하늘이여, 비를 내리소서’〓특히 가뭄 피해가 심한 중부 북부지역을 비롯해 곳곳에서 기우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반 한탄강 줄기인 강원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승일교 밑. 철원군여성단체협의회원 20여명이 과일과 명태포 등을 놓고 제사를 지낸 데 이어 키로 물을 떠 까부른 뒤 몸에 물을 적시며 비를 내려 줄 것을 빌었다.

요즘 좀체 보기힘든 이같은 기우제는 30여년 전에는 이 지역에서 행해졌으나 지금은 구전으로만 전해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

철원군청 관계자는 “워낙 극심한 가뭄이라 전통 기우제를 재연해 봤다”고 말했다.

또 이날 화천군생활개선회도 하남면 삼화리 용화산 계곡의 샘터인 속칭 ‘강철이 웅덩이’에서 호미로 웅덩이 바닥을 긁는 색다른 기우제를 지냈다.

이 지역에서는 샘터에서 동네 부녀자들이 모여 호미로 계곡바닥을 긁거나 목욕과 빨래 등을 하며 계곡 일대를 어지럽히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충북지역의 경우 충북도가 5월 14일 기우제 행사를 가진데 이어 보은군과 진천군 등이 지난달 중순과 하순 기우제를 지냈다.

<춘천·울산·청주〓최창순·정재락·지명훈기자>mhj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