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탄입니다요!/ 당신은 땅에서 나를 잔인하게 뜯어내고/ 나는 당신의 광맥이 됩니다요, 나으리./ 나는 석탄입니다요!/ 당신은 내게 불을 붙입니다요, 나으리/ 화력 좋은 연료로 영원히 당신에게 봉사하도록…’ (호세 크라베이리나, ‘흑인의 절규’)
이 시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출신의 시인이 쓴 것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불행한 관계를 ‘석탄’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석탄’은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시인은 그 부정적인 이미지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화된 편견을 비교적 대담하게 뛰어 넘는 책 한 권이 나왔다. 롤랜드 올리버 교수가 쓴 ‘아프리카-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는 아프리카의 통사를 다루고 있다.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에서 원인(原人)이 출현했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게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를, 크게는 인류의 역사를 통찰하고 있다. 식량 생산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고대사를 문화인류학적으로 파고들어 가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프리카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 형성 배경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진술을 하고 있다.
이 책이 아프리카의 통사를 다룬 기존의 책들과 다른 점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위대한 업적만을 상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문명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등의 전파로 인한 지역별 종교 양상을 다룬 대목이나 서부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도시 형성의 특징 그리고 동·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목민과 농경민 간의 상호 침투로 인해 야기된 복잡한 사회 구조 등을 분석한 대목에서는 저자의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탁견을 능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노예제도와 식민지 분할을 다루는 장에서는 저자의 국외자로서의 한계가 다소 드러나는 아쉬움이 있다. 가령, 식민지시대 이전부터 행해지던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의 노예 거래와 대상 무역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아프리카의 정치 체제가 결국은 19세기 이후 서구 열강들의 소위 ‘아프리카 쟁탈전’을 부추긴 동인이 되었다는 식의 분석은 동일한 대상을 정 반대로 분석한 케냐의 알리 마즈루이(Ali Mazrui)나 기니-비소의 아밀카르 카브랄(Amilcar Cabral) 류의 분석과 사뭇 다르다.
독립 이후 아프리카를 비롯한 서인도 제도 등지에서는 지금 ‘역사 다시 쓰기’ 운동이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문학적으로는 세익스피어의 ‘폭풍’을 비롯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그리고 제인 오스틴, 다니엘 드포, 조셉 콘라드 등이 다시 쓰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통사를 다시 쓰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군데 군데 국외자의 관점이 불거지는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역사 다시 쓰기’의 당위와 명분을 비교적 충실하게 견지하고 있다.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