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국토-1]"물…물…물" 목타는 국토…강수량 평년의 31% 수준

  • 입력 2001년 6월 3일 18시 23분


물, 물, 물…. 최악의 가뭄 속에 전 국토가 ‘타는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다. 댐과 저수지의 수량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으며 제한 급수 지역도 중남부 및 도서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가뭄은 이달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기상청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현재까지 전국의 평균 강수량은 평년값(지난 20년의 평균)의 31% 수준이다. 특히 이 기간의 경기지역 평균 강수량은 36.2㎜로 장마 때 하루나 이틀 정도 내리는 비의 양밖에 되지 않았다.

기상청은 “이달 하순 예상되는 장마전선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돼 ‘중부지방의 갈증’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예상했다.

▼글 싣는 순서▼

1. 물물물…목타는 국토
2. 요르단강을 잡아라
3. '아랍형' 남의 일 아니다
4. 물부족, 과학으로 해결?
5. 물은 생명이다

소양강댐 저수율은 34.1%로 예년의 4분의 3 수준. 소양강댐을 비롯해 전국 11개 다목점댐의 저수율은 예년 평균(41.9%)보다 낮은 35.4%에 머물고 있다. 또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1만7956개 저수지의 저수율도 총저수 가능량의 66%선으로 지난 20년간 이맘때의 평균저수율 73%에 크게 못 미친다.

먹는 물마저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주민이 계속 늘어나 2일 현재 전국 57개 읍면에서 약 11만4000명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광역상수도가 보급된 지역(전국의 52%)을 제외한 지방상수도나 간이상수도 설치지역 중 일부는 심각한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농림부는 “모내기는 전국적으로 82% 가량 진척돼 큰 고비는 넘겼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가뭄이 계속될 경우 심은 모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북부지역 일부에서는 고추 참깨 콩 등 밭작물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으며 가뭄피해는 중부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민간, 지역간의 물 다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요르단강 확보를 둘러싼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물 전쟁’처럼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물로 인한 갈등이나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가뭄 대책이 응급처방에 그치고 있어 차제에 ‘물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대 이정전(李正典) 환경대학원장은 “건설교통부는 이번 가뭄을 겪으면서 댐 건설 주장을 다시 펴고 있고 환경단체 등은 댐 건설에 부정적”이라며 “범정부 차원에서 물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마실 물도 고갈" 전국 곳곳 단수▼

《“농작물이 말라죽어 간다.” “마실 물을 달라.” 전국 곳곳에서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현재의 물 부족은 일차적으로는 극심한 가뭄에 따른 현상이다. 그러나 가뭄에 의한 일시적 피해 차원을 넘어 조만간 우리의 미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물 부족 실태〓지난달 13일부터 시 전역이 단수됐던 경기 동두천시. 급수는 재개됐으나 하루 4만여t의 수돗물을 생산하던 동두천 취수장의 현재 생산량은 예년의 30%에 불과하다. 원수(原水)를 제공하는 한탄강 상당 부분이 바닥을 드러낼 만큼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연천군 한탄강 하류에 있는 동두천 취수장의 수위는 30㎝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24시간 가동이 불가능하다. 동두천시의 주요 산업시설인 피혁단지에는 하루 3000t도 보내주지 못해 공장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경기도와 동두천시는 4월 팔당호에서 물을 끌어오는 ‘광역상수도확충계획’을 마련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시가 소요 예산 520억원을 조달하기 어려워 제대로 추진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두천지역에 급수중단 사태를 초래한 한탄강의 수량 부족은 인근 연천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천군은 식수를 임진강에서 취수하기 때문에 급수중단 사태를 겪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농가에서 제때 모내기를 하지 못했고 밭작물 파종이 미뤄졌다. 연천지역의 경우 올 들어 지난달 말 현재까지 강수량은 30㎜도 안돼 예년(200㎜ 안팎)의 30%를 밑돌고 있다.

연천군 연천읍 은대1리 주민 박승관씨(49)는 “‘비님이 내리시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어 더욱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관정을 파려 해도 군내 대부분의 지역이 화강암이 아닌 현무암층이라 수맥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95년과 99년에 발생한 두 차례 홍수 피해의 ‘주범’으로 지목된 연천댐이 결국 지난해 6월 완전 철거돼 ‘물 부족 사태’를 빚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탄강에는 치수(治水)시설이 전혀 없다. 또 한탄강 상류도 점차 말라붙고 있어 포천군도 급수중단이 우려된다.

▽피해지역 중부 이남으로 확산〓정부는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은 경기 북부를 비롯해 일부 산간 및 도서지역의 ‘국지적’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피해지역은 중부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신모씨(50)는 “하루 종일 농장에서 말라비틀어진 자식 같은 나무를 매만지며 하늘만 쳐다보다 돌아온다”고 하소연했다.

충북지역에서도 13개 읍면 주민 중 1337명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도내 곳곳에서 고추 담배 콩 등 밭작물 상당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말라 죽어가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앞으로 10여일 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간이상수도를 이용하는 가구의 절반 가량이 제한급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도는 양수기 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으나 별다른 도움이 못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의 경우 1주일째 하루 2시간 동안만 수돗물이 공급되고 있다. 영양읍내 중앙초등학교가 교내급식을 중단하기도 했으며 2개 중고교는 소방서로부터 하루 4t 가량의 물을 공급받고 있으나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적 합의’는 요원?〓전문가들은 물 부족 사태와 관련해 “유례 없는 가뭄 탓이지만 비가 온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봄이면 가뭄으로, 여름이면 홍수 피해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연평균 강수량은 1283㎜로 세계 평균(973㎜)보다 30% 정도 많으나 6∼8월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데다 국토가 경사가 급한 산악지대가 많아 물 이용률은 26%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는 사막이 없으면서 유엔 기준으로 ‘물 부족 국가’(1인당 연간 이용가능량 1700㎥ 미만)로 분류되는 특이한 곳이다.

건설교통부는 물 이용 증가 추세를 볼 때 2011년 약 18억t의 물이 부족할 것이며 특히 경기 북서부권과 수도권 서해안지역, 경남북의 동해안, 경남 남해안의 물 부족이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중소규모 댐을 건설해 수자원을 확보해야 하며 광역상수도 보급률을 2011년까지 6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와 환경단체 등은 “물 수요 관리는 하지 않고 공급만 늘리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환경단체 등은 또 “건교부의 물 수요 예측 등 기초 통계를 믿을 수 없다”며 “낭비가 심한 농업용수만 제대로 관리해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합적인 물 관리 정책수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 관련 업무를 나눠 맡고 있는 건교부(수자원 개발 및 광역상수도 관리)와 농림부(농업용수 관리), 환경부(수질 개선 및 지방상수도 관리) 등 부처간 생각이 달라 물 수요 예측이나 물 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관기자·연천〓이동영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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