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송승헌, '준서'버리고 '열혈 변호사'로

  • 입력 2001년 6월 3일 18시 41분


흑단(黑檀)이란 나무가 있다. 나무 한가운데가 짙은 까만색인데 그 색채가 윤기가 흐르면서 기품이 있어 고급 가구나 악기의 재료로 사용된다.

예로부터 ‘흑단’이라는 단어는 동양 미인의 눈동자나 머릿결을 비유할 때 쓰일 만큼 신비한 여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검은색 머리를 치렁치렁 자랑하는 가수 셰어나 진한 검정 속눈썹이 뇌쇄적인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는 바로 그런 ‘흑단 미녀’들이다.

탤런트 송승헌(25)이 지닌 매력은 바로 ‘흑단 같은’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남자라는 점이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와 숯덩이 같은 눈썹은 남성에게도 검정색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고급스럽게 비칠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짙은 눈썹과 속눈썹이 장점이 될 줄 모르고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어릴 적 동네 아줌마들이 지나가다가도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 하나 올려놔도 되냐’고 놀려 끊임없이 가위로 잘라대서 그나마 짧아진 거예요.”

학창시절에 주변에서는 그를 예비연예인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그럴 생각 없다’면서 한발 뺐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를 해도 대학은 가야지’ 하시더라구요. 그 때 극구 부인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속에 품고 있던 것을 남이 알아채는 것이 쑥스러워 그랬던 것 같아요.”

실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것도 매력의 하나다. KBS 미니시리즈 ‘가을 동화’ 이후 6개월 동안 쉬었던 그는 6일부터 방영될 SBS 16부작 미니시리즈 ‘로펌’(극본 박예랑, 연출 정세호)에서 다섯 살 연상의 변호사 정영웅 역으로 시청자 곁으로 돌아온다.

“‘승부사’(98년)의 형사, ‘해피투게더’(99년)의 검사 역에 이어 변호사 역까지 맡았으니까 이젠 판사 역만 남았네요.”

그가 그려낼 정영웅은 변호사에 대한 고정이미지를 깨는 것이다.

“미성년자 강간범 변론을 맡았다가 ‘너 같은 놈은 감옥에 가야 한다’면서 법정을 박차고 나가고, 석방된 그 사람을 보고는 길거리에서 두들겨 패고…. 수임료 문제로 고민하지만, 가슴 속의 정의감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미 물씬한 변호사죠.”

그간의 휴식기간 중 골프에 재미를 들인 탓인지 살이 빠져 보였다. 이제 필드에 두 세번 나간 정도.

“99년 ‘팝콘’을 찍기 전 1년 가까이 쉬었더니 몸무게가 늘어 제가 봐도 통통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신경을 쓴다는 게 6㎏나 빠져버렸어요.”

과묵한 터프가이로 고정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그 자신의 생각이 궁금했다.

“터프가이도 싫지는 않지만 한 가지 색깔을 갖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역할을 다해본 뒤 30대 초반쯤 비로소 내 색깔을 갖고 싶어요.”

그는 그동안 자신의 연기가 대사 안 틀리고, NG 내지않기에 급급했다고 인정하면서 ‘가을동화’ 이후론 힘을 빼고 연기하는 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고민 하나. 드라마마다 상대역 여배우들이 대부분 죽는다는 것. 그리고 보니 ‘가을동화’의 송혜교는 물론 ‘그대 그리고 나’에선 이본, ‘팝콘’의 김규리, 심지어 영화 ‘카라’에서 김희선까지 그의 상대역들은 극중에서 비련의 죽음을 맞았다. 그 때문에 ‘가을동화’에선 농담처럼 ‘차라리 저도 죽여주세요’라고 건넨 말이 실현됐다.

‘가을동화’는 확실히 그의 연기생활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 준 작품이었다. 귀공자의 이미지에 눌려있던 송승헌은 죽고, 새롭게 연기에 눈을 뜬 송승헌이 기대된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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