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 에세이]손해본 어느 노부부 역정은 커녕 위로‥

  • 입력 2001년 6월 3일 19시 45분


지난 2월초였다. 작년 8월 이곳에 온 이후 담당하던 고객들중 연세가 여든이 다 되신 어르신 내외분이 계셨다. 사업에 바쁜 자녀들의 예금까지 직접 관리하실 정도로 기억력도 젊은이 못지 않았다. 다만 노파심 때문에 상담할 때는 확실하게,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이날도 예금 만기가 됐다고 전화로 알려드렸더니 찾아오셨다. 나는 마침 시행중이던 비과세생계형저축으로 가입하시라고 권했다. 그중에서 10%대이상 수익률을 내고 있는 단기신탁상품이 좋다고 안내했다. 당시 확정금리상품 이자율은 6∼7%수준에 그쳤다. 두분은 3개월짜리 단기상품이 자신들의 자금계획과도 잘 맞는다며 만족해하셨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이분들이 가입한 뒤부터 3년만기 국고채금리가 7%대에 이를 정도로 상승했고 따라서 채권에 투자한 단기신탁상품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두분이 맡긴 원금이 손실나기 시작했다. 처음 한달간은 ‘일시적인 현상이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달이 다 지나도록 금리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다른 고객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이 판단해 가입한 것이었지만 두분은 전적으로 내 설명에 따라 결정했기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고민 끝에 시간을 더 끌기보다는 빨리 알려드려야 겠다고 결정했다. 역정이라도 내실까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의 원금 손실규모를 솔직히 말씀드리고 “앞으로도 금리가 안정되기에는 상당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안내도 했다. 두분께서는 별 말씀 없이 내일 찾아가겠노라고만 하셨다.

다음날 나는 두분께 드릴 스카프선물을 준비해 놓고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자리에 앉으신 두분께서는 긴장해 있는 내게 “손대리가 잘 해주려고 하다 그렇게 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오히려 위로해주셨다.

두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평소에 찾아오셨을 때는 차한잔 드리며 상담한 것 밖에 없는데 자식 같은 사람의 고충을 선뜻 이해해 주신 것이다. 두분이 가신 뒤 혼자 생각에 잠겼다.요즘에는 은행창구에서도 다양한 복합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금융지식으로 잘 무장하고 있는지, 고객에게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 등을 반성하게 됐다. 고객이 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매양 그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고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손길선(국민은행 청계지점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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