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간단한 설명과 실험절차를 설명했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교사와 보조교사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면 달려가 조언을 했다.
제시카 헌팅턴양(16·여)은 무려 6번이나 실험을 반복한 끝에 겨우 만족할 만한 실험결과를 얻어 실험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
헌팅턴양은 “중학교 과학시간에는 학생이 많아 실험을 별로 하지 못했는데 실험 위주로 공부하게 되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실험보고서는 실험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공립고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30명선이지만 이 학교는 많아야 20명이다. 게다가 교사 1명에 보조교사 1명이 있어 교사 1명이 10명 가량의 학생을 가르치는 셈이다.
▼글 싣는 순서▼ |
-2부 다양성이 경쟁력- 1. 한국 2. 독일 3. 프랑스 4. 덴마크 5. 미국 6. 좌담 |
게이트웨이고교는 틀에 박힌 공교육의 교육방식과 성과에 불만을 가진 몇몇 학부모와 교육운동가들이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98년 설립한 ‘차터스쿨’. 이들은 교육위원회에 성취 목표를 제시하고 ‘계약’을 했다.
전교생이 285명에 불과한 ‘미니학교’이며 허름한 폐교 건물을 임차해 쓰는 형편이지만 지금까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다른 학교에 비해 높게 나타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목받는 학교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제시한 목표보다 낮은 성과를 낳았다면 없어졌을 것이지만 현재까지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학생 개인별 교육과 학생중심 학습을 통해 상당 수준인 캘리포니아주립대(UC) 계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기른다는 것. 일종의 대학입시 준비 고교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학교 이름도 ‘성공을 위한 관문’이란 뜻을 지닌 ‘게이트웨이’로 지었다.
게이트웨이고교의 교육과정은 인문학이 중심이며 과학 문학 역사 미술 언어 수학 물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우수한 학생을 위해 대학에서도 학점을 인정하는 최우수과정(AP)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1년에 두 번씩 캘리포니아주 평가시험인 ‘스탠퍼드 9’을 치러 그 결과를 교육위원회에 보고하고 있다.
교장 피터 소프 박사는 “우리는 ‘한가지 잣대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One size doesn’t fit all)’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면서 “학부모들이 학교의 교육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면 곧장 다른 학교로 자녀를 전학시키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학부모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공립학교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 학부모가 자녀를 학비가 수만달러나 되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된다.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와 같이 학비 부담이 거의 없으면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맛볼 수 있어 새로운 교육을 갈망하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위해서는 장비와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터스쿨은 학교운영비를 마련하는 것이 최대 고민거리다. 주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하지만 별도로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게이트웨이고교의 경우 학생 1명에 연간 7000달러(약 910만원)의 교육비가 들고 학교 임대료만 연간 18만달러(약 2억3400만원)여서 소프 교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학교를 소개하며 기부금을 부탁한다.
신입생은 지원자의 원서를 받아 별도의 선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추첨만으로 선발한다.
성적 우수자만 선발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는 것. 다양한 교육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생 구성도 다양하다. 학생은 인종별로 백인 40%, 라틴계 25%, 흑인 14%, 중국계 10% 등이다.
12학년생 트레이 포터(18)는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공부를 시켜주고 교사들도 다양한 교수법으로 가르치려고 항상 노력한다”면서 “학교의 설립취지나 운영방식이 마음에 들어 1시간반이나 걸리는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게이트웨이高 교육목표
- 캘리포니아주립대 입학 요건을 능가하는 도전적인 교육과정
- 다양한 인문교육 제공
- 학생 개인의 재능과 욕구를 만족시키는 교육장
- 자료 검색을 위한 컴퓨터 및 기술교육
- 인간적 사제 관계로 머리와 가슴을 육성
- 스포츠 클럽활동 통한 전인교육
- 학생 가정 학교의 유기적 협력관계
- 풍부한 문화경험
-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
▼차터스쿨은?▼
차터스쿨은 학교가 스스로 교육 목표를 설정하고 운영 성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다.
기존 공사립 학교가 차터스쿨이 되려면 교사와 해당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들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교육위원회가 교사 학부모들이 만든 헌장(Charter)을 검토해 학교와 ‘운영계약’을 맺고 설립 인가권을 준다. 학교는 교육 과정, 수업 운영 등에서 완전한 자율권을 갖지만 계약서의 목표를 충족하고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교육위원회는 학업 성취도 등을 평가해 학교의 운영을 심사한다. 대체로 계약 기간은 3∼5년이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인가가 취소되거나 폐교되기도 한다.
차터스쿨에서는 부모, 교사, 지역단체 등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퇴생 장애아 등 특수한 학생을 위한 소규모 학교도 있지만 일반 학교와 같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는 학교들이 많다.
학부모들은 교육 수요자이자 운영 주체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 매우 적극적이다. 주정부가 차터스쿨의 재정을 대부분 지원하지만 학교가 발전 기금을 조성해 운영비의 일부를 마련하기도 한다.
91년 미네소타주에서 학부모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을 주기 위해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36개 주와 수도 워싱턴시에 2063개의 차터스쿨이 생겨났고 학생 수는 51만8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97년 연두교서에서 2000년까지 3000개의 차터스쿨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 교육부는 94년부터 차터스쿨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99년에 1억달러를 지원했다.
▼'본 넥스트…' 교장 이반 챈 인터뷰▼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인 샌 퍼낸도에 위치한 ‘본 넥스트 센추리 러닝센터(VNCLC·Vaugh-n Next Century Learning Center)’. 이름 때문에 직업기술학교로 착각하기 쉽지만 미래지향적인 철학을 지닌 차터스쿨이다.
이반 챈교장(여)은 미국에서 유명한 교육계 인사. LA타임스 뉴스위크 등 신문 잡지에 그녀에 관한 기사가 단골로 실린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 학교에 견학을 올 정도.
챈 교장은 우범지대의 볼품없는 학교를 93년 차터스쿨로 전환해 전국적인 명문교로 탈바꿈시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챈 교장은 “90년 처음 부임했을 때 이 학교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이 밀집한 지역에 있어 항상 범죄가 들끓었고 심지어 학부모들이 학교에 침입해 컴퓨터 등 학교 기물을 훔쳐갈 정도였다”면서 “학생들은 대개 연간 수입이 1만5000달러 이하의 가정 출신이었으며 학력수준은 바닥이었다”고 말했다.
“내 집을 저당잡히고 17만5000달러를 빌려 학교를 위해 썼다. 솔선수범하면서 ‘학부모 의식개선 운동’을 시작했다. ‘왜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협박’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교내에 세탁실을 설치해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자 학부모들의 외모부터 깨끗하게 변했고 학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챈 교장은 법을 연구해 주 정부가 학교를 지원할 의무가 있는 예산 항목을 찾아내 교육청과 싸워가며 예산을 유치했다. ‘학부모클럽’을 만들어 학교에서 영어를 못하는 학부모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실직 학부모에게 기술 교육도 시켰다. 서서히 학교가 지역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아갔다.
챈 교장은 “학교 실적이 좋아지자 주 정부 지원과 기부금이 쏟아져 지금은 한해 예산이 900만달러나 된다”며 “우수한 교사들을 고용해 실적이 좋은 교사에게는 더 나은 대우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도 좋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학교는 지원자가 늘어 현재 학생 1200여명에 교사 65명으로 미국에선 매우 큰 규모다.
그녀는 “차터스쿨은 학교가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이 학교를 예전과 다름없는 공립학교로 방치했다면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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