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명재(明載·58)씨와 4월초 재정경제부 차관에서 물러난 정재(晶載·55)씨 등 5남1녀의 남매가 모두 모였다. 맏이인 경재씨도 5월12일 은행장을 퇴임, ‘잘 나가는 3형제’가 모두 야인(野人)이 된 뒤 첫 만남이었다.
이날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경재씨는 “그동안 우리 남매가 함께 모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식사하면서 집안이야기를 나눈 것이 더욱 소중했다”고 말했다.
금융계와 검찰, 경제부처에서 ‘일가견’을 가지며 자주 화제가 됐던 ‘이경재 3형제’는 요즘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경재씨는 주로 독서와 산행, TV시청 등으로 소일한다. 정재씨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면서 휴대전화도 집에 두고 가는 날이 많다. ‘다음 자리’를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경북고와 서울대를 나와 ‘수재 3형제’로 불린 이들은 현직에 있을 때도 각자 선택한 분야에서 실력과 인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92년에는 3형제가 은행감독원 부원장보(경재), 서울지검 특수1부장(명재), 재무부 이재국장(정재) 등을 맡아 경제사건과 관련된 요직을 동시에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면목은 올해 ‘아름다운 퇴장’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때문에 현직에서 물러난 뒤 더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세 형제 중 가장 먼저 물러난 정재씨는 재경부 차관 퇴임 1주일 전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직속 상사인 진념(陳稔)경제부총리도 몰랐다. 그는 차관 재직 때 이미 재경부의 인사적체를 풀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 후배들에게 인사숨통을 터주었다.
98년 기업은행장에 취임한 경재씨는 1000여 차례나 현장을 방문하고 직원의견을 수렴해 ‘발로 뛰는 뱅커’로 불렸다. 그는 97년 1조3500억원의 적자를 낸 은행을 99년 1886억원, 2000년 4042억원의 흑자를 올리는 ‘우량은행’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물러날 때 은행 직원들은 “은행을 살려놓고 나가시는 행장님께 감사합니다”라며 울먹였다.
3형제 중 마지막으로 옷을 벗은 명재씨는 합리적 추궁과 설득으로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 상사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칭찬까지 받았고 특히 경제범죄 수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퇴임사에서 “위대한 검사는 좋은 보직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들 3형제의 ‘아름다운 은퇴’는 좋은 의미의 ‘유교적 전통’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재경부의 한 공무원은 “이분들을 보면서 노자가 말한 ‘지지불태(知止不殆·물러나야 할 때를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를 떠올렸다”며 “나이가 들수록 욕심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은 세태에서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