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매력탐구]실제 모습이 훨씬 예쁜 '처녀' 김여진

  • 입력 2001년 6월 4일 18시 53분


한 영화잡지에서 김여진이란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실제 만나고 보니 정말 예쁘다’라는 말을 두서너 번은 썼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싱거운 기자가 있긴 있구나’했다. ‘김여진? 뭐 그렇게 예쁘겠어?’라는 맘으로.

내가 김여진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였다. 온몸을 던져 연기를 했던 진희경과 몸사리기 바빴던 강수연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순진하면서도 멍청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아! 그 여배우?’였다.

나는 김여진이 그렇게 썩 괜찮은 배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왜 있지 않은가? 그 배우의 캐릭터와 극중인물이 거의 붕어빵 같아 따로 연기가 필요 없는 경우. 영화 속에서 왕성한 성적 호기심과 일상을 따분해 하는 그 묘한 순진함이 어우러진 캐릭터가 바로 저 김여진 자체겠지 했다.

물론 특별히 매력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 평범했다. 여성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미성년자처럼, 진짜 ‘처녀’처럼 느껴졌다.

그 뒤 나는 한 대학의 신입생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개 약속보다 일찍 가는 나는 그 날도 내가 일착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여성이 와 있었다. 단정한 갈색코트에 거의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그저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따스한 눈길을 주며 살짝 인사를 하는 모습이 여자인 나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나는 ‘저 여자가 누굴까?’ 궁금해했다. 이어 참석자들이 우루르 들어왔다. 우리는 대학 쪽의 소개로 정식 인사를 하게 됐는데 나는 진짜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바로 김여진이었던 것이다. 화면 속의 그녀와 실제의 그녀는 그렇게 달랐다. 배우얼굴을 기억하는 데는 거의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내가 착각할 정도로 실제의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행사시작을 앞두고 서로 활발히 의견을 내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름다운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졸업생을 대표(?)해 신입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무대는 김여진의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 대학시절 운동권학생으로서 겪은 눈물과 기쁨과 좌절에 대해, 젊은 여성의 성에 대해서 차분하게 그러나 할 이야기를 확실하게 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올 누드로 어떻게 연기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 신입생에게 “너무도 평범한 몸이었기 때문에 올 누드가 될 수 있었다”는 멋진 답변도 했다.

김여진은 유머와 순발력과 내용이 있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러나 더 큰 매력은 평범함으로 감싼 신뢰와 축적된 독서량, 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비로소 나는 그녀가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얼마나 훌륭한 배우노릇을 했는가를 깨달았다. 그 뒤 ‘박하사탕’과 TV드라마에서 김여진을 바라보며 우리가 아주 좋은 연기를 하는 여배우를 얻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몹시 아름답기까지 한.

전여옥(방송인·㈜인류사회대표) satuki@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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