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현재 “당시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3월13일 본보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강압과 협박에 못 이겨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위증죄로 처벌받으면 이씨의 증언이 허위증언이라는 사실이 ‘확정판결’로써 확인되는 것이므로 재심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점.
따라서 재판부는 다음 재판일인 25일 이씨를 소환해 당시 증언의 진위 여부를 직접 따져볼 계획이다. 정씨 변호인들은 “이씨가 당시 허위증언을 했고, 이씨에 대한 위증수사가 공소권 문제로 불가능하다는 객관적 사실이 입증되면 재심 개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씨 외에 한모씨(39) 등 당시 증인 1, 2명을 더 심문한 뒤 재심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지만 이씨 심문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이날 법정에 나올 계획이었으나 3일 갑자기 남편이 사망하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다.
재심 개시가 결정되면 정씨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다시 시작된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재심 개시가 결정되면 정씨에게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많다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당시 사건의 물증이 거의 없는 데다 증인 대부분이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정진석씨 일문일답 "진실 귀기울인 법원 결정에 감사"▼
정진석씨는 4일 법원이 ‘억울한 사연’에 처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그 자체가 ‘감격’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법원에 대해 느끼는 점은….
“법원의 용기 있는 결단에 감사한다. 정의가 살아 있고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법원의 처지에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뒤집기 위한 절차를 밟는 게 부담이 많을 텐데 용단을 내려 줘 고맙다.”
-오늘 심문 받기로 한 증인 이모씨(63·여)의 개인 사정 때문에 증인심문이 연기됐는데….
“아쉽지만 30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더 못 기다리겠느냐. ‘과거의 증언은 억압적인 상황에서 강요된 것’이라는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를 낸 이씨에게 감사 드린다.”
-사건 당시 유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증언을 한 사람들이 야속할 텐데….
“분노나 복수심 같은 감정은 정리한 지 오래다. 그때는 시대가 그랬다. 어둡고 추운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 바른 증언을 하겠다는 여러 증인이 고마울 따름이다.”
-몇 명을 제외한 사건 수사 관계자 대부분은 아직도 당시 수사에 문제가 없었다는 견해인데….
“그때는 혐의가 분명하다고 믿고 밀어붙였던 수사 관계자들 처지에서도 지금 돌이켜보면 지나쳤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데 늦는 법은 결코 없다.”
-건강 상태는 어떤가.
“중풍 때문에 쓰러져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했다.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많이 불편하다. 손이 떨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다른 관심사는 없다. 내 무죄만 밝혀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