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추격에 대한 집념〓작년 말 삼성전자를 방문한 주룽지 중국 총리는 “어떻게 하면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육성할 수 있겠느냐”며 반도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삼성전자의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를 따라오기에는 산업구조상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대답했다가 중국측 관계자들이 안색을 붉히는 바람에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는 것. 중국 고위층의 첨단기술에 대한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
중국의 기술추격에 대한 집념은 일부 업종이나 전통업종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백색가전에서 세계 제1위의 제조국가로 올라선 데 이어 10차 5개년 계획기간(2001∼2005년)을 통해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중공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항공우주, 바이오 등 첨단산업분야에서도 기술을 습득, 2010년 미국을 추월하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제 한국은 필요없다’〓한국업체들의 고민은 중국이 한국의 손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기술습득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작년 말 세계적인 화학업체인 바스프가 중국 난징(南京)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어 BP아모코, 셸 등 다국적 기업의 투자도 허용할 방침.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로 한국 석유화학업체들은 중국특수를 누렸지만 이처럼 세계적인 업체들이 중국으로 직접 뛰어들면서 한국업체의 특수는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반도체업체인 NEC도 최근 일본의 반도체 핵심라인을 중국 상하이(上海)로 옮겼다. 외국기업의 대중(對中)투자는 매년 400억달러를 넘어설 정도다. 자동차 가전 철강 정보기술 분야의 세계 일류기업은 최근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모호해지는 한국의 위치〓삼성경제연구소 유진석 박사는 “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중간재나 기술을 받아 선진국에 수출하는 무역구조를 갖고 있었으나 최근엔 ‘방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앞세워 세계의 일류업체를 유치, 직접 기술을 이전 받고 있다”며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경우 세계무역구조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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