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모래 바람이 모처럼 한국의 안방에 불었다. 그 바람은 사막의 타는 목마름과 억센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실어 나르고, 시청자의 가슴속에 조용히 잦아들었다.
3일 KBS 1TV의 ’일요스페셜-사하라에서의 7일, 한 은행원의 일상탈출’은 최고 프라임타임인 일요일 밤 8시 시간대에 손색이 없는 내용으로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사실 무슨 대단한 이념적 배경이나 지식으로 무장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한 평범한 은행원이 사하라 사막에서 열리는 일주일 장정의 사막 마라톤을 완주해 내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지극히 연대기적인 구조의 다큐멘터리였다.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그러하듯, 그냥 정해진 거리를 꿋꿋이 달리는 ‘검프’같은 우직함이 기둥처럼 받쳐준 이 프로그램이 허를 찌르듯 마음에 와닿은 이유가 뭘까.
◆ 땀내 나는 다큐에 감동 물씬
사하라 사막에서 열리는 ’사막 마라톤’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라면 당연히 탐낼 소재다. 안온함을 거부하고 사막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미 미국과 유럽의 방송사도 앞다투어 방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날 프로그램이 마음을 두드린 이유는 무엇보다도 악전고투하는 주인공이 한국인이었고, 40대 평범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여정이 코피 터지도록 치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사막이 사하라에만 있으랴. 어느새 이날 프로그램은 사하라 사막의 운동경기 이야기가 아니라 힘겨워하는 한 한국사람의 이야기로 마감하고 있었다. 물집 잡힌 그의 발을 보며 괜히 내 발이 시큰 거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 맨 마지막 부분, 서울로 돌아온 그가 지하철역에서 단정한 양복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은 그런 흐름에 아주 걸맞는 마무리였다. 성공한 피쳐 스토리란, 이렇게 남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이다.
땀 냄새 물씬나는 프로그램엔 어김없이 감동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감동의 크기가 흘리는 땀의 양에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방영되는 ’도전, 지구 탐험대’(KBS2 오전 9시)에서는 풍성한 볼거리를 배경으로 연예인들의 극기훈련 모습이 예쁘게 펼쳐진다.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모습은 연예인의 번들거리는 이미지에 진지함을 보태준다. 그 환경이 열악할수록, 거기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생생할수록, 공감의 폭은 넓어진다.
‘체험, 삶의 현장’(KBS1 일요일 오전 8시반)은 주로 유명인사들을 힘든 노동현장으로 내몰아 그들이 땀흘려 벌어온 돈을 이웃돕기성금으로 쓴다는 포맷으로 진행된다. 3D업종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땀흘리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땀의 댓가가 금방 돈으로 치환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루치의 땀의 양으로는 부족한 때문인지, 감동은 그리 신통치 않다.
◆ '타인의 삶' 지켜보며 희망 배워
나름대로 고단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우리는 똑같이 힘겨워하는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어려움을 이겨낸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배운다. 이런 속내를 읽을 줄 아는 TV만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