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해부학적으로 말하자면 ‘형님’이 아니라 ‘누님’이지만, ‘그 세계’에서는 ‘누님’도 ‘형님’이다. 그 세계? ‘조폭’(조직폭력배)의 세계다.
영화 ‘조폭 마누라’의 주인공을 맡은 신은경(29). ‘조폭 마누라’는 ‘조폭의 마누라’가 아니라 ‘마누라가 조폭’이라는 뜻이다. 조직의 2인자인 여자 조폭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순진한 남자와 결혼한 뒤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 액션물이다.
인터뷰를 위해 신은경과 마주앉았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곳은 그의 가슴이었다. (그는 가슴이 깊숙히 파진 ‘쫄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별로 안 야하네’였다.
“조직의 2인자인 여자 보스 역이예요. 액션 영화도 처음이고 코미디도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어요. 스태프들도 찍으면서 웃느라고 난리예요.”
옆 테이블까지 들릴 만큼 큰 목소리, 똑 부러지는 말투, 검게 염색한 짧은 커트머리, 한 듯 안한 듯한 화장, 액세서리 하나없이 알이 커다란 시계 하나만 달랑 찬 코디….
7년전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TV드라마 ‘종합병원’에서부터 굳어진 ‘중성적 이미지’가 풀풀 풍겨났다.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야하지 않은 자신의 이미지에 불만은 없을까.“배우에게는 어떤 이미지든 하나쯤 꼭 필요하죠. 그런 이미지가 있어야 관객들도 변신했다, 달라졌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제 이미지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요. 저는 제 자신이 ‘중성적’이라기 보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여자’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는 올해 3편의 영화를 찍는다. 현재 40% 정도 완성된 ‘조폭 마누라’에서 조폭, 그리고 올 하반기 촬영에 들어갈 ‘이것이 법이다’와 ‘살인비가’에서는 각각 여형사로 나온다.
특히 ‘조폭 마누라’에서는 고난도 액션 장면도 선보일 예정. 3개월전부터 매일 3시간 이상 강훈련을 받았다. 초반에는 15㎝ 하이힐을 신고 돌려차기 하는 장면에서 깨진 유리 위로 넘어져 부상했다. 그는 바지를 걷어부치고 유리가 박혔던 흉터가 예닐곱 군데쯤 남아있는 왼쪽 종아리를 보여주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무술감독님한테 몇 달간 낙법을 배운 덕분에 크게 안 다쳤어요.”
그가 소화해야 할 액션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주가리 차는 장면’. 뒤로 공중제비 돌아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란다. ‘울트라 D난도’쯤 되는 액션은 어쩔 수 없이 대역을 쓰지만 웬만한 장면은 직접 소화하겠다는 각오다.
얼마전에는 등판 전체에 ‘용문신’을 했다. 남편에게 조폭임이 탄로나는 장면을 위해서다. 물론 진짜 문신은 아니었다. 그래도 30시간 가까이 특수 잉크로 등에 문신을 그리는 동안 꼼짝달싹도 할 수 없어 무척 고생했다. 잉크가 마르기 전에 움직이면 문신이 갈라지기 때문.
아역배우 출신인 그는 오랜 무명 시절까지 합쳐 올해로 연기생활 16년째다. ‘조폭 마누라’는 그가 스타가 되고 난 후 찍은 여섯번째 영화. 이 전의 다섯 작품은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깊은 감정이 배어나는 멜로 영화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혼같이 큰 아픔을 겪고 나면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진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일찌감치 그에 못지않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충분히 성숙했어요.”
‘아픔’이란 물론 4년전 인기 절정이었던 그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 음주운전사고다. 싱긋 웃으면서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이제는 그 상처가 다 아물었나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도 차를 몰까.
“운전이요? 어휴, 저 그 때 면허 취소됐잖아요. 다시 따야 되는데 시간도 없고 엄두도 안나요!”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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