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렌퀴스트 현 대법원장이 사임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년 전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가 강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낸 월터 델린저가 “역사상 누가 차기 대법원장이 되어야 하는지가 지금처럼 분명했던 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할 정도다.
오코너 판사가 이처럼 강력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부각된 데에는 그녀가 중도 보수파라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민주당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를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으로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오코너 판사를 차기 대법원장으로 지명한다면 상원 청문회를 별 문제 없이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대법원장 지명 여부와 상관없이 오코너 판사는 이미 미국의 법관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히고 있다. 보수주의자 세 명, 중도 보수파 두 명, 자유주의자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법원에서 앤서니 케네디 판사와 함께 중도 보수파에 속하는 오코너 판사의 의견이 판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역사상 대법원에서 오코너 판사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많았다. 그러나 오코너 판사가 과거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재판과 판결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오코너 판사는 항상 모든 사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총괄적인 원칙을 세우기보다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서 각각 당시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판결을 내리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따라서 나중에 다른 사건을 심리하면서 과거 자신의 판결을 뒤집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그녀가 어떤 사건을 맡을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지 추측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녀의 이러한 업무 스타일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녀는 당시 미국인들의 정서를 놀라울 정도로 잘 반영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녀의 이런 태도를 가리켜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오코너 판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우유부단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코너 판사 자신도 “사건을 맡으면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결코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오코너 판사가 이 같은 결단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서부의 농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코너 판사의 남동생 앨런 데이는 “농장에서는 트럭이나 말을 타고 멀리까지 나갔다가 갑자기 차가 고장나거나 울타리가 망가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서 바로 이런 경험들이 오코너 판사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2001/06/03/magazine/03OCONNO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