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석순/물대책 이대론 안된다

  • 입력 2001년 6월 12일 18시 22분


극심한 가뭄이 한반도의 목을 조여와 비상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시간만 지나면 가뭄은 씻은 듯이 해갈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홍수 피해가 기다리고 있다. 가뭄과 홍수를 반복하고 나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한다. 불행하게도 인명에서 재산까지 피해를 보는 사람은 모두 서민들이고 농민들이다.

▼중-일은 지속적으로 댐 건설▼

과거 200년 동안 나타난 최악의 가뭄은 1901년에 기록된 연간 강우량 370mm이었다. 현재 한반도의 연평균 강우량이 1274mm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가뭄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한 1884년부터 1910년까지 27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가뭄으로 인해 민심은 피폐해졌고 민란과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왕조도 이 기간에 무너졌다.

한국은 중동지역의 사막국가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유엔이 분류한 물부족 국가군에 속해 있다. 그러면서도 장마 기간에는 하루 600mm에 이르는 게릴라성 집중 호우가 예측을 불허하며 전국을 기습하기도 한다.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지난 100년 동안 강우량이 50%나 증가했으나 늘어난 강우는 장마기간에 집중됐다. 중국과 일본은 늘어난 강우로 인한 홍수 피해와 물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공댐을 건설해 현재 미국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과 더불어 세계 10대 수력발전 국가가 됐다.

수력발전은 수몰지역의 육상 생태계 파괴나 안개 발생과 같은 국지적 기상변화, 부영양화 현상 등의 환경문제를 야기하지만 화력이나 원자력에 비하면 환경친화적이다. 한국은 현재 총 전력생산량 중 3%만 수력에 의존하고 있다. 기상과 지형 조건이 비슷한 중국과 일본의 수력 의존도는 각각 18%와 9.2%이다. 미국은 9.9%, 캐나다는 62%, 프랑스도 15.4%를 수력에 의존한다. 한국은 석탄과 석유 그리고 핵연료를 수입해 가정과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공장을 가동하는 셈이다.

수입에너지에 국가경제를 맡겨둔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둘 물그릇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는 댐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90년만의 최악의 가뭄을 당하고서야 국가의 총체적 물관리 대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물관리의 3대 기본 원칙은 효율적인 수자원 공급을 의미하는 이수(利水)와 홍수를 방지하는 치수(治水), 그리고 맑은 수질과 수생태계를 유지하는 수환경 관리이다. 현재 물관리 원칙 3가지가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수환경 관리의 미비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불러 이수와 치수까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수 문제는 물사용량을 줄이고 지하수를 사용하고, 해수를 담수화하거나 폐수를 정화하여 재사용하는 대체 수자원 확보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연간 1조원이 넘는 홍수 피해를 방지하는 치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물문제 해결은 댐건설을 주축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추진돼야 할 사항은 바로 수환경 관리제도와 기술의 개선이다. 지금까지는 적은 경비로 많은 물을 확보할 수 있는 곳만 골라 댐을 만들었다. 댐건설 적지는 대체로 계곡이 잘 발달돼 경관이 아름답고 좋은 육상 생태계가 유지되는 곳이다. 따라서 댐을 만들려면 극심한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했다. 댐을 건설해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유발하고도 물값을 요구하는 사례가 계속돼왔다.

▼생태계 피해 줄일 기술 개발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쓸모없는 야산을 다듬어 생태계 피해를 줄이면서 댐건설 적지로 만들고, 지역 주민에게 충분한 피해보상과 생산되는 전력을 무료로 공급하는 등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항상 맑은 수질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관리가 건설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1442년 열악한 기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발명된 측우기는 가뭄에 비를 만들 수도 없고 장마에 비를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자연을 슬기롭게 다스리고 백성의 삶을 지혜롭게 했다. 비록 이번 가뭄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자연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철저한 물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석순(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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