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도 모른다는 '다음날 주가의 움직임'을 매일 예측해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이들은 수십 장의 차트와 각종 통계 수치를 연구하며 경제를 분석하고 주가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분명 경제 전문가다. 그러나 결국 '맞추느냐 틀리느냐'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또한 처절한 '승부사'이기도 하다.
동부증권 코스닥 팀장 장영수(張寧洙·31)씨. 지난해 한 언론사가 평가한 2000년 코스닥 시황 담당 애널리스트 3위에 오른 유망주. 그러나 승부사의 세계에 유망주란 별칭은 별 의미가 없다.
"예측이 적중하면 '증시의 꽃'이지만, 틀리면 한 순간 '고객 돈을 등쳐먹는 역적'으로 몰리죠. 숨막히는 세계입니다."
흔히 애널리스트로 불리는 증권사 리서치센터 직원들은 엄밀히 말하면 3개 분야로 나눠진다. 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에 따라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 투자전략을 고민하고 종합지수를 예측하는 스트래티지스트, 그리고 각 산업의 동향 및 기업 실적을 분석하는 좁은 의미의 애널리스트가 그 것.
애널리스트는 자격증이 없다. 외국 경영대학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애널리스트도 있지만 흔치 않다. 특별히 양성 기관도 없다. 증권사나 투신사의 리서치센터에 입사하는 것이 애널리스트가 되는 길. 지망자 중 상경계열 출신이 많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정보통신(IT) 기업 분석에 유리한 이공계 출신들도 환영받는 추세.
장팀장은 96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 그 해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에 입사한 상경계 출신. 입사후 말단 애널리스트로서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는 방식으로 일을 배웠다. 아직 애널리스트에 대한 체계적 교육체계를 갖춘 증권사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 도제(徒弟)식 교육만이 신참이 일을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국내 애널리스트의 전성기는 보통 30대 중후반으로 꼽힐 정도로 젊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직업의 특성상 오래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점. "극한의 긴장감 속에 새벽부터 밤까지 체력을 소진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로(早老)하는 경향이 많다"고 장팀장은 설명한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증시 애널리스트의 역사가 아직 일천하다는 점. 국내 증시에서 리서치센터가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후반부터. 그 전에는 조사부로 불리던 리서치센터는 영업에서 '물먹은' 사람들이 잠깐 쉬어 가는 곳 정도로 인식됐다. 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억대연봉의 스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
그러나 역사가 짧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앞으로 더 많은 길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팀장은 "앞으로 미국처럼 60,70대 백발을 휘날리는 능력 있는 애널리스트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증시에서 애널리스트의 역사는 지금 막 그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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