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JP의 '철면피 골프'

  • 입력 2001년 6월 12일 18시 31분


골프는 옛날로 치면 사냥쯤 되는 운동일 것이다. 들에서 농사 짓는 농부들이야 멀찌감치 쳐다만 볼 수밖에 없는 점이 닮았다. 옛날 왕이나 고관이라야 말타고 활쏘는 사냥이라는 취미생활이 가능했다. 요즘 골프도 대중화 되긴 했지만 농민들 눈에 정치인들이나 부자가 즐기는 귀족 스포츠일 뿐이다. 플레이어 혼자서 활을 쏘거나, 골프공을 치는 운동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경기인데도 시종이나 캐디같은 경기 보조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빼닮았다.

▷중국 당나라의 태종도 수렵광(狂)이었던 모양이다. 당 태종이 산에서 짐승을 쫓다가 비를 만났다. 명주에 기름칠한 비옷, 유의(油衣)를 꺼내 입어도 방수가 불완전해서 비에 젖기는 마찬가지 였다. 신하 곡나율(谷那律)에게 물었다. "유의는 어떻게 만들어야 비가 새지 않겠는가?" 현명한 곡나율이 아뢰었다. "기와장으로 유의를 만든다면 결코 비가 새지 않을 것입니다." 비오는 날은 사냥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당 태종은 깨우침을 준 곡나율에게 명주 2백필을 내려 주었다. 생각할수록 그 간언이 너무 기뻐 따로 황금띠 한 벌도 하사하였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자민련의 김종필(金鐘泌)명예총재가 가뭄 난리속에 주말골프를 즐겼다는 보도를 보면서 1천년도 훨씬 지난 시절 왕과 신하의 대화, 그들의 깊은 헤아림을 생각한다. 즐기되 빠지지 않는, 비오고 가뭄드는 일기 여건을 살피는 자제력과 지혜가 위정자에게는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공직자들의 '현충일 골프' 가 화제가 되고 있다.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 가뭄비상 까지 겹쳐있는 판에 필드에서 굿샷을 즐긴 철부지 공직자들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사정당국은 40명을 적발해서 관계부처에 명단을 통보 했다고 한다. 이어 주말인 9,10양일간 국방부등에선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민을 돕자는 취지로 골프금지를 지시했다. 그런판이기에 공동여당의 한 축인 자민련의 오너요, 현정부의 총리를 지낸 JP의 '철면피 골프' 가 원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누구는 감찰하고 누구는 예외냐고.

<김충식 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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