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로 열렸던 대 프랑스전. 우리 나라가 예선탈락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던 프랑스전의 대패는 특히 많은 아쉬움이 남는 일전이었죠. 이 경기를 보며 많은 분들이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에 대해 지적을 하셨습니다. 한국축구만의 투지가 실종됐다, 정신력이 해이해졌다. 심지어는 어떤 분은 선수들의 평소의 머리 길이까지 문제 삼아 ‘연예인 같이 머리스타일에나 신경쓰고 있으니 정신이 썩어 빠졌다, 무조건 스포츠로 깎아라’ 라는 조금은 유아적인 비판까지 합리화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았고 또 지적을 했던 것처럼, 그날 따라 우리 선수들은 마치 약먹은 병아리 마냥 공이 오면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은유의 달인 송재익 캐스터의 비유처럼 말이죠. 게다가 상대 선수가 돌진해 오면 허둥대는 모습이며 번번이 수비에서의 커버가 안 돼서 뚫리는 모습, 그리고 평소에 안정감이 그의 최대의 장점이던 이운재 골키퍼의 거듭되는 결정적인 실수까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많은 실수와 허둥댐을 보여주었죠.
이로써 많은 언론에 대두되었던 것이 한국축구 특유의 ‘첫 경기 징크스’. 큰 대회에서의 첫 경기에서 지나친 부담감으로 인해 얼어버려 평소의 실력을 못 냄은 물론이고 한국축구 특유의 색깔까지 잃어버리는, 공격을 하는 것도 또 수비를 하는 것도 아닌, 마냥 끌려 다니기만 하는 플레이… 그러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전에서 그리 비관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비록 다섯 골이나 내주고 대패를 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수비와 공격라인간의 공수의 간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나, 상대에게 쉽게 하프라인을 내주지 않으려 압박을 시도하려 했던 점, 그리고 경기를 지배하는 팀이 승리한다는 히딩크의 지론처럼 경기를 지배하기 위해 볼 점유율을 높이려 했다는 점(물론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러한 시도가 눈에 보이는 한판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프랑스 전은 결코 지난 날의 많은 강팀과의 시합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그들 아래에 놓고, 시합하기도 전에 이미 지고 들어가는 그런 마인드가 아닌 적극적인 마인드였다고 봅니다. 다만, 세계 1위를 맞이하여 싸우는 선수들의 그러한 마음가짐과는 달리,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그들과의 실력차에 당황하는 듯한 선수들의 허둥댐이 아쉬울 뿐이었죠.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허둥댐과 당황도, 또다시 깨지더라도 진검승부를 하겠다는, 우리의 축구를 하겠다는 그런 마인드가 전제된 지난 프랑스 전과 같은 경험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그들과 다시 붙더라도 우리만의 색깔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러한 몇 가지 긍정적인 점은 있지만 5:0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아쉬움이 남는 한판임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4강 진출이 세 팀이 같은 승점을 가진 상태에서 골 득실로 결정지어 졌음을 생각할 때는 그때의 당황과 그로 인한 실수로 먹은 한골 한골이 더욱 아쉬운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나라는 왜 항상 월드컵과 같은 큰 시합 때마다 첫 경기에 그토록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우리와 비슷한 경기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일본이 이번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나 사우디나 이란 등이 유럽의 강팀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 나라가 그렇게 매번 첫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비단 5:0의 스코어가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거듭되는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에서의 첫 경기의 부진과 유럽팀에 대한 징크스는 단순히 그 당시의 선수들의 정신력 등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해서, 저는 그 이유를 우리 나라의 축구 선수들이 커오는 현재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승부에 대한 지나친 중압감입니다. 선수들에게 시합에 임함에 있어 적당한 긴장과 책임감은 그들에게 경기에 집중하고 흔히들 말하는 ‘투혼’이라는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승부를 즐기려고 하는 선수들의 자의적인 발로에 의한 것이 아닌, 승리만을 위한, 때로는 폭력에 가까운 감독의 질책이라든지 열혈 학부모들의 극성스러운 부추김 같은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 선수들은 겉으로는 매우 정신력이 투철해 보이고 강해보이나, 어느 정도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대를 만나거나 하면 언제 급격히 무너질지 모르는 것이죠.
즉, 지금은 8강 정도까지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전국대회 4강이라는 컷트라인을 향해서는 어쩔수 없이 이기는 경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더구나 올해부터 조별리그 이후 결승토너먼트방식으로 바뀐 지난번 속초에서 열렸던 춘계 중고 축구연맹전, 그 대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회가 리그방식이 아닌 토너먼트 방식으로 되어있다 보니 아무리 강팀이라 해도 단 한번의 패배가 바로 탈락으로 이어지는거죠. 어쩌다 강팀을 만나 첫판에 지고 나면 4강은 커녕 명색이 축구선수인 이들이 일년에 고작 3, 4게임 정도밖에 뛸 수가 없는 현실이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팀이든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리기보다는 승리를 위한 자신들만의 몇몇 필살 플레이 패턴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시험을 앞두고 비록 70점을 맞더라도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익히고 이해하려 하는 것이 아닌, 전해지는 족보를 통해 100점을 맞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러한 패턴 플레이가 먹히지 않는 팀을 만나거나, 혹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상대를 만날 때에는 평소의 강하게만 보이던 투지는 간데 없고 시종일관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시험을 앞두고 달달 외워둔 족보에서 한 문제도 안 나온 경우와 같습니다.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무기이자 최강의 무기가 먹히지 않으니 공이 자신에게 오면 어쩔줄 몰라 당황되고 무기력해 지는 것이죠. 이럴 때는 경기 중에 선수들 스스로 그때그때 상대의 약점을 스스로 찾아 뚫을 수 있는 또 다른 패턴으로 가야할 것이지만,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하고 연습을 해보지도 못한 패턴인지라 시도를 한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예 그러한 시도는 생각지도 못한다는 말이 더욱 맞겠죠. 물론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면 어느 정도 자신들의 플레이가 무너진다는 것은 일본이나 이란 등 여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만 우리의 경우처럼 과연 축구경기를 하는 건지, 우리가 알던 그 팀이 맞는지조차 의심이 될 정도로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기만 하는 모습은 많지 않죠.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란게 거의 탄탄한 기본기와 세기를 바탕으로 한 미드필드의 운용이 아닌, 힘을 위주로 한 지난날의 유럽식의 축구에 가깝다 보니 이러한 선수들이 성장하여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무대에서 원조 유럽국가들을 만나게 되면 고전을 하는 것입니다. 밑천이 드러난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元祖 힘의 축구’ 앞에선 맥을 못추는 것이죠.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조건이 그러한 힘의 축구를 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흔히 뻥축구라고 불리는 킥앤러쉬 라든가 포스트 플레이를 하기에 유리하여 그렇게 발전되어온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단순히 승부만을 위해 그런 식의 축구를 해온 것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근래의 유럽팀들은 그들의 원래의 힘과 더불어 세기까지 갖추고 있음에야…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러한 선수들에겐 어릴 때부터 이미 축구에서의 승부를 즐기기보다는 꼭 이겨야 한다, 지면 죽는다는 식의 비장한 논리에 길들여져 있으며, 이것은 시합을 할 때에 언제나 확실하지 않은 모험이나 감독에 의해 정해지지 않은 플레이는 피하게 함으로써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이미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승부에 대한 부담감 그 자체를 즐기며 그것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에 얻어지는 성취감을 느껴야 할 시절에, 오히려 그것을 두려움으로 받아 들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네 선수들, 그들에게 월드컵과 같은 큰 경기에서의 첫 경기가 주는 부담감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하겠죠. 모든 축구인들의 소망인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선다는 두근거림과 이러한 큰 무대에서 이기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는 불타는 승부욕보다는, 지난날 습관처럼 길들여져 왔던 승부에 대한 중압감에 시야가 좁아지고 얼어버리는 겁니다. 더구나 통상 그런 큰 대회의 상대는 우리보다 강한 상대였음을 감안하고 평소에 창의적인 플레이까지 결여되어 있다면? 그 시합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한국 유소년 축구의 문제점은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또한 많은 분들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해서 몇몇 의식있는 축구인들에 의해 유소년 축구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아이들에게 스스로 즐기는 축구를 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000축구교실’과 같은 여러 사설 축구학교가 생겼죠. 그러나 그 설립 취지 자체는 한국축구의 여러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라 하겠으나, 불행히도 현실적으로는 그리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생긴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설 축구학교들이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여 지도를 함으로써 그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그 기량이 늘어날 시기인 중고등학교 때는 사설 축구학교가 아닌 각 학교의 축구부에서 지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 축구부로 그 적을 옮긴다 하여 그 아이들의 기량이 늘지 않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껏 즐기는 축구를 해왔던 아이들이 단 한번의 승패로 그 운명이 엇갈리는 제도권으로 들어감으로써 길들여지게 될 승부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굳이 교육부 등과 협의가 필요한 4강제도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먼저 많은 일선 지도자들에게 그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승부에 집착하게 하는 토너먼트제로 되어있는 각 대회들을 반드시 리그방식으로 바꾸어야 하며, 그렇게 바꾸기에 대회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통합시키는 관계기관의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사실상 언더그라운드에 있다고 보는 각 축구교실들을 오버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중고축구대회에 각 축구교실들도 같은 자격으로 참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앞으로 생기게 될 각 프로구단들의 유소년 클럽들에게도 동등한 참여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프로팀들이 각 각의 하위 유스클럽들을 가지고 있는 클럽화가 시급한 것은 물론이고, 현재는 단순히 축구에 대한 유희 정도로만 그치고 있는 각 축구교실들의 전문화와 고등학생 정도까지 그 대상을 확대하여 좀더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각 연령별 세분화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여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유소년 축구의 중심을 학원축구에서 클럽중심으로 옮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글을 맺으려 합니다. “대륙간컵을 마치면서” 라는 거창한 타이틀아래 이래저래 한참을 떠들었지만, 결국 한국 축구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달간 휴가 겸 코파컵 관람을 간다고 하는 히딩크를 붙잡아두는 것도 아니요, 지금 현재의 국가 대표급 선수들을 유럽에 진출시켜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아닌, ‘유소년 축구 시스템’입니다. 2002년 이후에도 분명 월드컵과 축구는 존재할 것입니다. 선수나 감독 모두에게 승부에 대한 부담감만을 주는 현재의 유소년 시스템을 선진화 시키지 않고서는 아무리 현재 국가대표 전원이 유럽의 빅 쓰리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다고 해도, 안정환이 세리에 에이에서 득점왕을 먹는다 해도, 히딩크가 아닌 축구의 신이 와서 우리나라 감독을 맡는다고 해도 결국은 임시 방편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2002년 이후에도 이땅에서 계속 축구를 할 것이라면 말입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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