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발전위의 이같은 논의는 당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간에 독자적인 대화통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나 청와대 비서진은 이에 부정적인 생각이어서 이 문제가 당과 청와대, 김 대표와 한 실장간의 ‘파워 게임’ 양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3월 26일 개각 때 김 대표가 청와대로부터 사전에 개각 내용을 통보받지 못한 이후 당 지도부가 한 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비서진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등 양측 갈등이 이미 표면화된 상태여서 파문이 확산될 소지가 크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무보고 때마다 청와대 비서진이 배석하는 바람에 당 총재인 대통령에게 직언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며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당 대표가 허심탄회하게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당 발전위 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 대표의 당무보고 때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하는 것은 현 정부 초기 김중권 실장 때부터의 관행으로, 이는 투명한 국정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또 “김 대표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에는 개각 하루 전에 당사자들에게 인선 사실을 통보해줬으나 정보 누설이 잦아 3·26 개각 때엔 당일 새벽에야 통보해줬다”며 “의도적으로 김 대표를 따돌린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측근들은 “김 대표가 뜨니까 개각 때 청와대가 김 대표에게 물을 먹인 것”이라며 “김 대표 취임 후 3·26 개각 때까지는 당의 인기가 좋았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정풍(整風)을 외치고 나섰을 때에도 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들의 집단행동을 만류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이들의 청와대 인적 쇄신 요구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이 지난달 30일 “민주국가의 모범을 보이는 과정에서 정보기관과 당간의 유대가 끊어져 당은 정보를 모른다”며 “정보는 청와대와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청와대가 나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
당 발전위가 아직 김 대표 당무보고 때 한 실장 배제 방안을 김 대통령에게 공식 건의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당의 요구가 관철되면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당의 견제 기능은 한층 강화될 게 분명하다.
또 ‘대통령→청와대 비서진→당’으로 이어지는 여권의 일방적 의사소통 구도를 ‘대통령↔당’의 쌍방향 구도로 바꾸려는 당의 구상도 부분적으로나마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김 대통령은 98년 취임 이후 투명한 국정 운영을 강조하면서 당 지도부의 독대를 허용하지 않고 대표의 보고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을, 당4역의 보고 때는 정무수석이나 정책기획수석 등을 배석하도록 해왔기 때문이다.
감사원장이나 국가정보원장 보고 때도 관련 수석비서관이 배석하는 게 통례였다. 이는 힘을 어느 한 쪽에 실어주지 않는 김 대통령의 용인술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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