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을 마주 하노라면 마치 인간의 심연을 보는 듯하다. 인간 심성엔 무엇인가 이 사탑처럼 삐딱한 데가 더러 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와 제도의 숲 속에도 삐딱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많다. 종교와 예술의 화원에 돋아난 사이비,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음란물, 집회 시위 현장에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 공창, 원조교제, 낙태, 살인, 안락사, 그리고 형벌제도의 동산에 노송처럼 비스듬히 서 있는 사형제 등등.
▷며칠 전 미국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교도소에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범 맥베이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한낱 폭파범에 불과하지만 ‘연방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이며 ‘연방청사 폭파는 통제할 수 없는 연방정부에 대한 정당한 전술’이었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진술 중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끝맺는 시구가 허무의 난파선을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사형은 형법의 세계에 불안하게 서 있는 사탑과 같다. 사형은 사형수의 과거만 묻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치유하는 사형수 자신의 놀라운 내적 변화는 묻지 않는다. 그를 잃고 한평생 아픔 속에 살아갈 가족들의 고통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사형은 잔인한 범죄보다 더 잔인하다. 미 연방대법관을 지낸 블랙먼은 생애 마지막 판결에서 사형에는 편견과 오류의 잔재들이 섞여있어 더 이상 사형기구의 서툰 수리공노릇을 않겠노라 선언했다. 사탑의 수리공들에게 퍼부어졌던 ‘무책임한 광기’라는 비판이 오히려 사형의 틀에 딱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김일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법학)ilsu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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