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의 고소득자’라는 비판이 부담 됐는지 모르지만 기실 봉급이 많다고 해서 파업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번 파업의 절차와 명분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라면 왜 대한항공 조종사인들 파업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지난달 봉급도 두둑이 받아 놓았겠다, 당분간 먹고 살 걱정도 없으니 악착같이 파업을 해서 얻을 것은 더 얻어내는 것이 현명한 짓이다.
단 부탁하건대 앞으로 또 파업을 하게 되더라도 제발 당신들은 붉은 머리띠만은 두르지 않기를 바란다. 조종사가 ‘투쟁’을 새긴 시뻘건 천을 머리에 두르고 붉은 조끼를 입은 채 보잉 747점보기를 몰아 1만피트 상공을 날아가고 있고, 내가 그 비행기에서 까마득한 발아래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붉은 머리띠에 약한 공권력▼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동네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박박 깎은 머리에 ‘쟁취’의 각오를 담은 붉은 띠를 두르고 환자로 찾아온 갓난아기 심장에 청진기를 들이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그야말로 ‘닭살 돋는’ 일 아닌가.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좀 더 독창적이고 이지적인 수단을 택해야 자존심이 지켜지고 호소력도 얻게 된다. 구호를 외칠 때 허공을 가르는 이상한 팔 동작도 그렇고, 거리에 나선 시위대 맨 앞줄에서 플래카드를 잡고 있는 늘 엄숙한 표정의 그 낯익은 얼굴들도 여론으로부터는 감점 대상일 뿐이다. 시도 때도 없는 시위에 시민의 불편이 한겹 두겹 쌓이면서 사회분위기는 그렇게 변했다.
시민을 ‘열 받게’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선 무력한 공권력이 짜증 대상으로 으뜸이다.
대우차 과잉진압으로 목이 흔들리다가 ○○덕분에 다시 자리를 잡은 우리의 경찰청장은 바로 경찰청 코앞에서 방화가 빚어지고, 진압경찰이 화염병 불길에 휩싸이고, 립스틱라인의 여경들이 계란세례에 오믈렛이 되어도 불법시위 주동자를 결코 잡지 않았다. 시위대는 쇠파이프를 흔들어도 경찰은 진압봉조차 쓸 수 없는 나라, 정부가 그렇게 ‘물’로 보이는 나라라면 불법시위는 동트고 해질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합법적 파업은 보호되어야 할 근로자들의 권리이다. 최대한 참아야 하겠지만 안 되면 파업을 수단으로 노사가 함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끝을 경험하면서 승패를 가르고 힘의 균형을 깨야 한다. 고통이 기억될 때 싸움은 쉽게 재발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때 정부의 역할은 법의 ‘링’안에서 반칙을 막는 심판이어야 한다. 물론 국민이 겪어야 할 불편을 최소화하고 승부가 날 때까지 인내해 주도록 관전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임무다.
노동선진국 미국의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노사간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행정부와 항공관제사들간의 한판 승부에서였다. 오랜 대결로 양측은 지칠 대로 지쳤고 서로 엄청난 상처를 받았지만 결국 레이건 전대통령이 불법파업을 벌이던 관제사들을 단호하게 전원 해고한 이후 이 나라의 노사환경은 새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노사가 고함만 질러도 서둘러 만만한 쪽을 양보시키면서 싸움을 말려주고, 타결만 되면 반칙도 없던 것으로 해줄 만큼 너그럽기 그지없다. 여기에 익숙해진 비겁한 싸움꾼은 손해볼 일 없으니 기회만 되면 덤벼드는 나쁜 버릇을 갖게 된다. 일도 안 되고 동네만 시끄러워지는 다툼의 반복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국민이다.
▼불법에 엄하면 끝날 일▼
정부가 회사 쪽을 편드는 것도 금물이지만 불법을 저지른 노조 간부를 고발한 사용자에게 대여섯 군데의 정부기관이 나서 고발을 취하하고 노조 요구를 수용해 조용히 끝내라고 압력을 가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그런 경험이 남기는 것은 사상적 불신과 기업할 의욕을 잃었다는 푸념뿐인데 그런 기업인들이 우리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이번 대한항공 파업이 타결된 후 비슷한 잡음이 나오는 것도 꺼림칙한 일이다.
정부가 노사 어느 한쪽에 불법을 묵인하는 혜택을 줌으로써 힘의 균형이 유지된다면 소모적 노사분규는 끝을 볼 수 없다.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불법에 단호하기만 하면 산업평화는 저절로 얻어질 것이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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