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도서/파리에서]베르나르 피보가 초청하다

  • 입력 2001년 6월 15일 18시 35분


◇파트릭 람보, ‘베르나르 피보가 초청하다’, 그라세 출판사

매주 금요일 밤, 26년 동안 TV 앞에 수백만의 프랑스인을 모은 프로그램이 이달 말에 막을 내린다.

문학, 역사, 종교, 철학, 정치, 예술, 과학 등 각 방면의 저자들을 주제별로 여러명 초대하여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이 방송은 1975년 시작 당시에 ‘아포스트로프’(돈호·頓呼)로 불리다 1991년부터 ‘부이용 드 큘뜨르’(문화의 용광로)로 명칭이 바뀌었다.

책의 ‘적’으로 등장한 TV를 역이용, 약 1200회에 걸쳐 5000명의 저자들에게 자신들의 새로운 저서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프랑스의 책문화에 큰 역할을 담당한 이 프로그램의 중단에 작가들과 출판계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런데 저자들을 초대, 책을 소개하는 방송이 프랑스 TV에 이 프로그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맡아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방송으로 만든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의 떠남이다.

베르나르 피보는 올해 66세로 법학과를 졸업한 기자출신이다. 그가 ‘따옴표를 여세요’란 방송으로 TV에서 책과 독자들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시작할 때가 38세. 그전에 한 편의 소설과 한 권의 문학평론만을 낸 그는, “서툰 작가가 되기보다는 쓸모있는 기자”를 택해 책에의 봉사에 그의 삶을 바친다.

그의 성공의 비밀은 무엇보다 방송에 논해질 책들을 단 한권도 빠지지 않고 전부 읽은 후, 자신의 앎을 빛내기 보다는 시청자의 위치에서 초청작가들과 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며, 초대작가들끼리의 대화를 주도해 이끌어갈 수 있는 그의 책에 대한 대단한 정열, 호기심, 존중 그리고 정직과 겸허한 태도에 있다.

그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을 위해, 작가나 출판사들과 사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철칙을 스스로 세워 지켜왔고, 그의 명성이 한창일 때도 경영에 구애받지 않고, 책읽기에만 전념하기 위해 국영 TV에서 독립, 자신의 프로그램을 파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공공의 봉사를 우선으로 세운 그의 원칙은 80년대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책이 팔리려면, ‘피보 방송을 반드시 거쳐야’ 하게끔 됐으며, 정치가들도 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 프로그램 중단을 아쉬워 하는 소리가 높다. 지난 3월, 일요신문 ’주르날 드 디멍쉬’는 ’신간 서적 전시회’ 특집호로 베르나르 피보에게 초청됐던 저자들 150명의 감사 편지와 회고담을 모아 ‘감사해요! 베르나르 피보’를 50쪽의 부록으로 발간했었다.

그리고 이달에는, 나풀레옹의 오스트리아와의 혈전을 다룬 역사소설 ’전투’로 199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공쿠루상을 동시에 수상한 중견 작가 파트릭 람보가 그의 신작으로 ‘베르나르 피보가 초청하다’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시기를 195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피보의 프로그램에 초대되었을 작가들을 상상한다. 카뮈, 사르트르, 말로, 브르통, 콕토, 셀린느, 모리악, 크노, 쌍드라스, 비앙 등 당시의 쟁쟁한 10명의 작가들이 출연, ‘작가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가’와 ‘소설은 도대체 무엇에 소용되나’라는 피보가 던진 주제에 대해 진지하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가상 작품이지만 대화의 90%는 이들의 실제 기사, 기자들과의 대담, 서신, 연구 등에서 발췌했다.

자신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판매전략에 매달려 초대석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기 보다는 점점 연기를 하게되는 것을 애석해 온 문학의 열렬한 수호자 베르나르 피보에게 이 보다 더 이상적인 보답이 있을까?

‘독서의 교황’이라는 별칭이 붙은 피보는 자신이 직접 지은 문장으로 TV에 학생 및 성인이 참가하는 ‘받아쓰기’ 대회를 착안, 프랑스어와 글의 보급에 적극적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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