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마지막 의열투쟁인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역 조문기, 광복 후 좌우합작운동 및 4·19 이후 혁신운동을 주도했던 송남헌, 김구 선생의 한국독립당 부녀부장을 지낸 김선, 광복 직후 통위부(국방부) 인사국장을 지낸 백남권, 군장성 출신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내무장관을 거쳐 1970년대에도 내무장관을 역임했던 박경원, 광복 직후 남로당 지방조직 간부를 지낸 남쪽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이 책은 1999년 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가 구술자료 채록 사업을 통해 수집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항일운동가, 군인, 정치가, 교육자, 예술가, 장기수 등 다양한 위치에서 ‘해방과 분단’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 여덟 사람의 개인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한국현대사의 전체 구조를 엮어내는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동흥실업학교 교사,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일본 도쿄 고마끼(小牧)발레단 문예부장, 한국 예그린악단 단장, 음악펜클럽 회장,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등 한국예술계 곳곳을 거쳐 현재 유니세프한국문화예술인클럽 회장, 서울예술단후원회 회장 등을 맡고 있는 박용구씨. 이렇게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예술계의 산 증인으로 살아온 인물의 구술자료는 곧 현대 한국 예술사가 된다.
김책공업대 금속공학부를 졸업한 인민군 군관 출신으로 1963년 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당시 남쪽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이었던 숙부 최주종씨를 찾아 서울로 왔다가 체포돼 지금껏 비전향장기수로 남은 최하종씨. 그의 삶은 곧 생생한 비극의 분단사다.
물론 구술자료는 기억의 부정확성, 관점 및 선택의 주관성 등으로 인해 문헌 기록보다 치밀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료를 확충하고 묻혀진 과거를 복원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연구자가 대상 시기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역사적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 등에서 역사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다. 더 늦기 전에 구술자와 연구자가 함께 엮어내야 할 우리의 현대사가 곳곳에 널려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