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토플러 눈에 비친 밝은 한국

  • 입력 2001년 6월 17일 18시 20분


앨빈 토플러와 존 나이스비트. 이들은 미래학 분야에서 쌍벽(雙璧)을 이루는 세계적 대가다. 6월 초 이들이 방한했을 때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은 공통적으로 ‘관심과 호기심’이라고 대답했다. 나이스비트씨는 신문에 보도된 1, 2단짜리 지방 뉴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새로운 변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알고 있었고, 이를 미래 전망에 활용했다.

이들과 잠시 만난 공력(功力)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는 만용을 부리기로 할까.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5대 부실 대기업 문제’를 살펴보자.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외자유치에 성공했다는 반가운 기사가 눈에 띈다. 외국 투자가들이 12억5000만달러란 거액을 내놓기로 한 것은 그만큼 이 기업의 앞날을 낙관하기 때문이 아닌가. 세계 반도체 시장이 불황을 맞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대건설은 어떤가. 현대그룹의 모태인 이 회사는 지난달 사실상 ‘국민 기업’이 됐다. 엄청난 빚을 갚지 못하자 여러 은행이 주인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저마다 돈을 덜 떼이려고 힘겨루기를 벌였다. 다행히 은행들이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채권단이 영입한 노련한 전문경영인인 심현영 사장은 리더십을 발휘해 노조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금융시장 최대 관심사의 하나인 현대투신 매각협상도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상대방인 미국 AIG컨소시엄과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어 곧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자동차에서 미국 제너럴모터스(GM)로 넘어가는 데 대한 반감이 꽤 줄어든 것도 청신호로 비치고 있다. 매각 자체를 반대했던 대우차 노조 집행부가 ‘해외매각 결사반대’에서 협상과정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

쌍용양회 문제도 해결 기미가 보이고 있다. 쌍용양회 회생의 관건인 쌍용정보통신 매각작업이 진통을 겪고 있지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5대 부실대기업 문제가 잘 해결되면 한국경제가 응급치료는 받은 셈이 된다. 한국경제의 밝은 미래를 위해선 그 다음엔 본격적인 체질강화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 체제가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시장경제 중시원칙’을 외치는 정책책임자들의 목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말뿐이지 실제로는 정부규제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등 ‘반(反)시장경제’쪽으로 돌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장경제’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정의(定義)하자면 ‘자기 창의력과 노력으로 돈을 버는데 남들이 딴죽걸지 않기’가 아닐까.

토플러씨와 나이스비트씨, 이 두 사람은 모두 나이가 70대 초반이지만 눈망울엔 10대 소년의 순수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파르스름한 빛을 내며 반짝이는 이들의 맑은 눈은 일단 한국의 장래를 밝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 예견이 실현되기를….

고승철<경제부장>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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