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女에 대한 基準(기준) 역시 中國과 西洋은 判異(판이)하게 달랐다. 만약 백년 전에 中國이나 우리나라에서 美女選拔大會를 했다면 아마도 西洋 美人들은 入國조차 거절당했을지도 모른다. 머리는 노랗고 눈은 파라며 거기에다 키는 장대만 하니 이건 아예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중국 사람들은 西洋사람을 ‘洋鬼(양귀·서양귀신)’라고 불렀다.
옛날 중국의 美人觀은 時代에 따라 달랐는데 대체로 두 가지 타입이 있었다. 唐 楊貴妃(양귀비) 스타일과 西漢 成帝(BC 32∼BC 7)의 後宮이었던 趙飛燕(조비연) 스타일이다. 즉 楊貴妃가 ‘富貴牡丹(부귀모란)’형이라면 趙飛燕은 ‘臨風楊柳(임풍양류)’형이다. 다시 말하면 楊貴妃는 모란꽃처럼 豊滿(풍만)하고 妖艶(요염)한 반면 趙飛燕은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가지처럼 날씬한 스타일이다. 趙飛燕은 가는 허리로 춤을 잘 추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는 제비같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 조상들이 중시했던 것은 楊貴妃 스타일이었다. 즉 얼굴은 달덩이같이 둥글어서 모나지 않아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작고 튼튼한’ 여자를 더 選好했다. 소위 ‘복스러운’ 스타일인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시각적이기보다는 그저 일 잘하고 무엇보다도 生殖能力이 좋아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관념은 자연히 배우자를 고르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배우자의 選擇(선택)은 부모의 몫, 그것도 기준이 엉뚱한 곳, 즉 ‘후손 보기’에 있었지 아들의 의사는 아예 眼中(안중)에도 없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적어도 韓中 모두 美女란 특수계층에서나 생각했지 먹고살기 바쁜 평민들과는 거리가 있었음을 뜻한다. 중국말의 ‘요우 푸 치(有福氣·복이 있다)’는 단지 튼튼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로 아름다움보다는 生殖能力을 평가한 것이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美女를 ‘후어 쉐이(禍水·화근)’라고 하여 경계했다. 이처럼 중국에서 美女는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다음에는 ‘美人薄命(미인박명)’에 대해 알아본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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