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사극속의 패션 생생한 생활사

  • 입력 2001년 6월 17일 19시 16분


《TV의 역사드라마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브라운관에 다양한 시대의 의상이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KBS1 ‘태조 왕건’은 신라말 고려초,SBS ‘여인천하’는 조선 중기, MBC ‘홍국영’은 조선 후기, KBS2 ‘명성황후’는 조선 말기의 의상을 보여준다.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재현된 사극 속 ‘패션’이야기.》

▽왕건과 고종〓‘태조 왕건’의 왕건(최수종)과 ‘명성황후’의 고종(이진우)은 비슷한 시기에 대례식(임금 즉위식)을 치르는 장면이 방영됐다. 면류관과 면복(冕服)을 입은 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큰 차이가 숨어있다. 왕건의 면류관에 늘어뜨린 줄은 12개이고 고종은 9개다. 또 왕건의 면복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12개의 문양이 들어가지만 고종의 면복에는 이중 해와 달, 별이 빠져 있다.

왕건이 입은 면복은 중국 황제가 입던 십이장복(十二章服)이고, 고종의 면복은 그보다 한단계 낮은 구장복(九章服)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이 강해진 고려 공민왕 이후 우리 왕들은 중국 황제가 내려준 구장복을 입고 대례식을 치러야했다. ‘태조 왕건’의 의상팀은 왕건의 대례식에 처음으로 십이장복을 등장시켜 고려초의 독자성을 나타내려한 것이다.

황후의 의상인 적의(翟衣)에서도 명성황후(이미연)는 꿩무늬를 수놓은 치적의를 입었지만 신혜황후(박상아)는 봉황을 새긴 적의를 입었다.

▽고려 대 조선〓고려초와 조선시대의 여성의상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태조 왕건’시대 여성들은 치마를 저고리 밖으로 내입었다. 대신에 소매가 없는 조끼 같은 반비나 요즘 숄과 같은 표를 걸쳐입어 좀더 드레시한 멋을 냈다.

머리장식도 다르다. 신라말 고려초에는 귀족여성의 경우 평상시에도 무거운 가발을 착용했지만 조선시대 여성들은 평소 쪽진 머리로 간소하다. 이 때문에 ‘태조 왕건’의 여성연기자들은 머리 부분에 중량감에 눌려 지내야한다.

▽조선 대 조선〓조선시대 저고리 길이는 후대로 갈수록 짧아져 가슴선까지 올라간다. 이에 따라 저고리 길이는 ‘명성황후’때가 가장 짧고 ‘홍국영’, ‘여인천하’순으로 길어져야 하지만 드라마상에선 반대로 차이가 없다. ‘여인천하’가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느라 저고리 길이가 짧아진 반면 다른 두 드라마에선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저고리 길이를 늘였기 때문이다.

한복 치마선의 떨어지는 각도 다르다. ‘홍국영’에선 충실한 고증을 통해 당시와 같이 엉덩이 부분이 풍성하고 그 아래로 좁아지는 항아리형 치마선을 재현하기 위해 속치마까지 맞춰 입는다.‘여인천하’에서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퍼지는 삼각형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패티코트형식의 속치마를 입는다.

▽갑옷에도 패션이 있다〓조선시대 갑옷은 위 아래를 한 벌로 입는 원피스형이라면 고려시대 갑옷은 상 하의가 분리되고 다시 멜빵형식의 겉옷을 대입는 쓰리피스형이다.

드라마 촬영에서 연기자들이 입는 갑옷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다. 철갑옷 대신 알루니늄을 사용하면서 무게가 절반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남성 연기자들간에 패션경쟁도 치열하다.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의상에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

‘태조 왕건’에서 가장 화려한 패션을 자랑한 것은 견훤역의 서인석이었다. 왕건 역의 최수종이 수많은 전투에서 단 세벌의 갑옷을 번갈아 입은 반면 서인석은 전쟁터마다 갑옷을 바꿔 주문할 정도로 의상에 민감했다. 궁예역의 김영철이 줄곧 입고나온 황금색 의상 역시 변화무쌍한 궁예의 심리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색상의 농담이나 무늬를 매번 바꿀 만큼 섬세한 변화를 주었다고.

▽어떻게 재현했나〓각 방송국들은 복식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을 고증위원으로 위촉해 이들로부터 자문을 받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토대로 의상을 재현하는 경우도 있고 관련 자료가 풍부한 중국 대만 등에 사람을 보내 자료를 수집해 오기도 한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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