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경찰 비노출 단속 운전자 반발

  • 입력 2001년 6월 18일 18시 37분


《경찰이 4월 20일부터 순찰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를 이용한 ‘비노출 단속’을 시작한 지 벌써 두달 가까이 지났다.

몇 년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 ‘함정단속’이라는 비난에 번번이 좌절했던 경찰은 월드컵을 앞두고 선진 교통문화를 정착시키려는 각계의 지지에 힘입어 올해 드디어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현재 비노출 단속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안성간 68.1km, 영동고속도로 신갈∼섬강교간62.28km, 안산고속도로 신갈∼안산간 23.8km, 서울외곽순환로 조남∼판교∼퇴계원간 55.8km, 신공항고속도로 전구간 등지에서 일반 승용차를 6대를 이용해 이뤄지고 있다.》

도입 초기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일부 운전자들의 몰이해로 ‘비노출 단속’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매일 한두차례의 말싸움에 시달리기 일쑤다.

14일 ‘비마’라고 불리는 비노출 단속 승용차에 동승해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함정단속 아닙니까〓앞 좌석 쪽에 붙은 경찰 무전기와 뒷좌석 시트 위쪽에 놓인 초록색 경광등, 그리고 운전중인 정복차림의 경찰관. 생각보다는 꽤 ‘티’가 나는 비마의 모습이다.

“80∼100km로 빨리 달리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자세히 봅니까? 트럭이나 버스 등 덩치 큰 친구들은 경찰차인줄도 모르고 길을 비키라며 ‘빵빵’ 경적까지 울려대는데요. 비마 한 대당 매일 10여대씩 적발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고속도로순찰대 1지구대 허정행(許正行·33)경장의 말이다.

아니나다를까 10시50분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기점 39km 지점에서 2.5t 화물트럭이 1차로로 주행중인 비마 앞을 막아섰다. 단속 경찰관 바로 앞에서 버젓이 지정차로 위반. 경광등이 요란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허경장은 화물차를 앞지르며 손짓으로 갓길로 유도했다. 상황 판단이 안된 듯 화물차 운전자는 수백m을 더 달리다 갓길로 들어섰다.

허경장은 화물차로 다가가 운전자 이모씨(32)에게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경찰이예요? 난 내차에 실린 화물에 문제가 있어 얘기해주려는 사람인가 했는데…. 경찰인줄 알았으면 위반하지 않았죠. 이거 함정단속이예요!”

이씨의 항의가 거칠다.

이씨에게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 뒤 다시 운전대를 잡은 허경장은 “일반 승용차로 단속해서 갓길로 유도하면 아직도 따라오지 않는 차량이 많다”면서 “과태료를 부과할 땐 정복을 입고 있는데도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사람이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비노출 단속은 기존 순찰차와 공조가 필요하다. 비노출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며 적발한 법규위반 차량을 1∼3km 전방에서 달리는 순찰차에게 무전으로 알려주면 순찰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직접 단속에 나서는 것.

이날 경부고속도로에서 적발된 교통위반 차량은 모두 26대. 난폭운전으로 적발된 한 운전자(45)는 “감시카메라도 수킬로미터 전방에 표지판이 있는 마당에 예방이 목적이라면 비노출 단속을 할 때도 운전자에게 사전에 정보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운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경찰은 이달 17일까지 모두 1655대의 법규 위반차량을 단속했다.

▽성숙하는 시민의식〓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함정단속의 논란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이날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운전자들은 대부분 비노출 단속에 수긍했다.

회사원 장모씨(37)는 “교통신고보상금제, 비노출 단속 등은 반강제이긴 하지만 경찰관없이도 스스로 교통법규를 지키는 습관을 정착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 대학생 가네마루 가요(26·여·일본 도야마 거주)는 “일본에서도 10여년 전부터 후쿠멘빠토카(覆面パトカ-:복면 쓴 순찰차라는 뜻)라는 단속 승용차들이 있다”며 “일본에선 사복경찰관이 경광등도 보이지 않게 단속하지만 아무도 함정 단속이라고 항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청 이명규(李明圭)교통안전과장은 “함정 단속이 경찰이 범법 행위를 유도해 단속하는 것이지만 비노출 단속은 운전자들의 자의적인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것”이라며 “운전자 스스로 법규를 지키는 선진 교통문화 정착이 단속의 취지”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자문위원단〓내남정(대한손해보험협회 상무)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특별취재팀〓최성진차장(이슈부 환경복지팀·팀장) 송상근(〃·환경복지팀) 구자룡(경제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송진흡 남경현(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 최호원기자 (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리젠트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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