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8일 이들에게서 “전치 3주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간 정씨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이들 중 3명은 멀쩡한 상태로 병실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나머지 2명의 행방을 묻자 이들은 “한 명은 생일잔치에 갔고 다른 한 명은 기말고사를 보러 학교에 갔다”고 대답했다.
정씨는 “3주 진단이 나온 환자가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느냐”고 병원 측에 따졌지만 “환자의 행동을 병원이 일일이 감시할 순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이처럼 경미한 접촉사고 정도를 빌미로 병상에 드러눕고 보는 이른바 ‘나일론 환자’가 판을 치고 있다. 상대방인 ‘가해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돈을 뜯어내고 보험회사에서 더 많은 교통사고 보상금을 타내려는 의도에서다. 이들은 수입을 늘리려는 일부 비양심적인 병원 측의 이해와 맞아떨어져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진료를 거의 받지 않으면서 병상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일론 환자들로 손해보험회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짜 교통사고 환자들로 인해 손보사의 재정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게 손보사들의 설명.
또한 이들의 행위는 결국 자동차 보험료의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정상적으로 보험료를 내는 운전자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기 마련이다.
5월 초 어느 날 오후 서울 관악구 모 의원을 찾은 A보험회사 직원 김모씨(32)는 찾던 환자가 옆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족발을 놓고 소주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팔이 부러져 같은 병원에서 3주 동안 입원했던 가모씨(39·회사원)는 “같은 병실에 입원중인 환자 가운데 절반 가량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더라”며 “한 환자는 저녁 9시만 되면 외출했다가 다음날 아침 술에 취한 채 병실로 돌아오곤 했다”고 혀를 찼다.
대한손해보험협회가 97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전국 29개 주요 도시의 병 의원에 입원한 교통사고 환자를 점검한 결과 이런 ‘부재(不在)환자’의 비율은 14.5%였다. 또 지난해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율은 74.4%로 일본의 13.7%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자동차 사고 손해사정인 김광주(金光柱)씨는 “통원 치료 시에는 환자의 휴업손해가 없다고 간주하는 현 보험 약관이 입원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입원기간에 따라 휴업손해보상금이 점차 줄어드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