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최고위원 인터뷰 전문-1]

  • 입력 2001년 6월 22일 16시 59분


─김최고위원은 지난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최고위원들의 회동에서 어떤 문제를 거론했습니까.

“그날 회동 때 대통령께 민심이 심각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민심 이반은 개혁정책 추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점이 있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개혁정책 추진으로 정권이 몰락할 뻔했는데 포클랜드전쟁을 일으켜 위기를 넘겼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뢰가 부족합니다. 지난해 12월 때도 신뢰의 위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문제에서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임명을 위해 법무장관의 출신지역을 안배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4대 개혁을 추진한들 동력이 없습니다. 크게 쇄신해야 합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권한을 분산시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공식라인의 영향력 행사를 불식해야 합니다. 변화와 쇄신을 추진하고 심기일전하기 위해서는 빅3를 교체해야 합니다.

이런 기조 위에서 민주당이 노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변화가 핵심

김최고위원은 매사 진지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 탓에 ‘언론플레이’도 적시에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 탓인지 이날은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내용의 핵심은 개혁정책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라는 동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무총리, 당대표, 비서실장 등 당과 행정부의 핵심인사와 운영방식의 전면적인 교체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면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 대통령께서 탄압받던 시절, 투옥되고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국민의 참여를 요청했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자기 희생과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런 변화를 하려면 읍참마속이 필요한 겁니다. 대통령이 결정한 정책이 행정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으면 레임덕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이 변하는구나, 국민과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요컨대 대통령이 진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데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야당 총재시절에 말씀하시는 바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의중이나 심기를 살펴야 합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한 여당의원이 ‘YS는 정치대통령이 아니고 행정대통령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그 의원은 ‘대통령은 국정책임자이므로 관료들에게 일을 시키면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런 통치행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국민들이 직접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YS는 정치와 관련된 것은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에게 맡기고 자신은 과시적인 일만 하다가 결국 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기에 앞서 정치적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나 전략을 가지고 서로 토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토론을 즐기고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는 스타일 아닙니까. 오히려 장관들이나 당간부들이 대통령과 토론을 해낼 능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바쁘신 것 같습니다. 야당 총재직과 대통령직이 하는 일은 달라요.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합니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까 업무량이 과도한 겁니다.

그렇다면 장관이라도 유능해야 하는데 DJP 공조로 인재풀은 적고 그나마 나머지도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등용하니까 일을 맡기고 논의할 만한 장관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논의는 허망하고, 지루하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청와대에는 정치참모가 없습니다.

논의의 틀을 갖추고 있어야, 조언할 정치참모도 생기는데 그런 틀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과의 교감도 적어 대통령은 내가 추진하는 일은 옳은데 당간부들은 무엇을 하는지, 섭섭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구세력을 막아줘야 하는데 당간부들이 적극 나서지 않으니까 불만스러운 겁니다. 적극성을 보이는 사람이 없는 거지요.”

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나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하여 집권 준비를 했다.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개혁의 정통성은 자신이 갖고 있다고 보고 주로 전문성을 갖춘 학자나 구여권 출신의 관료들을 중용했다.

정책의 방향도 초기에는 IMF위기 극복과 정치적 안정을 위해 구세력과의 연대 모색에 치중하다 보니 개혁 정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화와 개혁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구태여 개혁세력을 보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정 경험이 없다 보니까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구관료나 학자들을 기용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일과 궂은 일을 측근들이 맡도록 한 겁니다.

개혁세력들은 이미 자기 편이니까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당정 시스템의 중요성을 생각은 했겠지만 실제로 작동시키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모든 결정이 대통령에게 올라가고 따라서 업무량이 과다해진거죠.

여기서 지체현상이 생기고 보고의 선후완급을 비서실장이 조절하니까 비서실장에게 권한이 몰리게 된 거죠. 이런 과정에 옷로비사건이 생긴 겁니다.”

─당시 김중권 비서실장이 대통령에 대한 언로를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로비 사건 때 대통령이 ‘마녀사냥’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는데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동안 당정협의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역할을 못했다는 겁니다. 당이 민심을 파악해서 정책기조를 결정하는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비서실과 행정부가 각각 따로 가니까 중구난방이 되는 겁니다. 정책조율이 안 되니까 무능한 쪽으로 가는 거지요.

그래서 나타난 시행착오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정국운영을 통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와 당대표, 비서실장이 수시로 만나야 합니다. 필요할 때는 관계장관도 부를 수 있어야 하고요. 여기서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세 사람이 의논해서 대통령에게 올릴 것은 올리고 조율해서 할 것은 거기에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매사를 대통령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총리나 장관이, 당대표나 당간부가 책임져야죠. 그래야 시스템이 작동하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 운영과 정치는 최고위원들이 맡아서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난해 8.30 전당대회 후 대통령께 매월 1,2회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는 최고위원들이 책임을 지고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권 내에는 정책이나 인사문제 등을 토의할 테이블이 없습니다.”

─최고위원 회의를 심의기구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까.

“그렇죠. 그런데 최고위원 회의가 토의를 제대로 해서 정치력을 발휘하려면 9명이하로 구성되는 심의기구여야 합니다. 이곳에서 정치적 사안도 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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