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왜곡된 性… 인간다운 삶

  • 입력 2001년 6월 22일 18시 27분


최근 트랜스젠더 하리수씨를 다룬 프로그램이 여러개 방영되었다. 유달리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억압이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 성전환자 연예인이 지상파 방송에 등장한 것은 ‘사회적 성(性)’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계기가 됐다.

이제는 페미니스트들의 금언처럼 되어버린,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시몬느 드 보봐르의 주저(主著) ‘제2의 성’(하서출판사·2000년)을 관통하는 선언이다.

보봐르는 이 책을 통해, 남성은 여성이 주체인 자신을 인정해주는 타자로만 기능해주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사회적 활동은 남성이 다 할테니 여자들은 남자가 하는 활동에 박수쳐주고 남자를 천재로 받들고 남자가 위안을 바랄 때 옆에서 다독여달라고 남자들이 요구했다는 얘기다.

이 책은 수 천 년을 이어온 남녀 성별 분업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사회적, 여성은 정서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사실은 만들어진 것이며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수천의 페미니즘의 모태가 되었다.

성에 대한 통찰이라면 그 자신 동성애자였던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나남출판·1997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푸코는 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전복적인 힘을 갖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본래의 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환상이 우리가 진정 전복적일 수 있는 힘을 빼앗는다고 지적한다.

‘성을 긍정하는 것이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반대로 전반적인 성적 욕망의 장치가 진전되어온 맥락을 따르는 것이다. 성적 욕망의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이어야 한다.’ 이같은 진술은 성에 대한 논의가 빠질 수 있는 함정과 탈출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성의 모습은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둠의 왼손’(시공사·1995년)에 표현된 게센이라는 상상의 행성일 것이다. 해롤드 블룸이나 프레드릭 제임슨 같은 저명한 비평가들도 찬사를 바친 이 작품에 나오는 외계의 인간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별이 없다.

이 행성의 모든 인간은 생식이 가능한 생리주기와 그렇지 않은 생리주기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수태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임신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성별 분업이란 상상도 할 수 없고, 이 사람들의 눈에는 남성-여성으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영구적 장애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성(gender)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작가는 성에 대해 무한히 열려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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