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문학위기 다룬 '인문학의 성쇠…'

  • 입력 2001년 6월 22일 18시 35분


◆인문학의 성쇠: 2000년 이후를 위한 생각들/ 샌더 길만 지음

/ 127쪽 /스탠포드대 출판부

인문학의 위기와 기초학문의 고사(枯死)에 대한 우려는 한국뿐 아니라 지금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1995년 미국 베닝턴 칼리지의 일리자베스 콜만 총장은 79명의 교수 중 외국어학과 소속 26명을 해고시키고 학과 통폐합을 강행해 화제가 됐다. 실용외국어라면 정규학과가 아니라 ‘랭귀지 스쿨’에서 담당해도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 시카고대는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존 듀이가 창설한 교육학과를 최근 폐지했고, 워싱턴대는 사회학과를, 그리고 뉴욕주립대(올바니)는 유럽어문학과 하나를 없앴다.

시카고대의 석좌교수이자 ‘현대어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샌더 길만 교수의 최근 저서 ‘인문학의 성쇠: 2000년 이후를 위한 생각들’은 왜 지금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가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길만 교수는 대학 사무처와 교수 학생 모두가 현재의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대학 사무처는 교육효과가 오랜 후에야 나타나는 인문학을 오로지 ‘생산성’과 ‘효용성’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학생들 역시 인문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와 분석능력,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법을 배우는 대신, 바로 돈 버는 전문분야로 뛰어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만 교수는 교수들의 태도변화도 촉구한다. 그는 인문학의 쇠퇴에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즉 수동적인 기득권 지키기나 과거에 대한 향수보다는, 자신감 속에 스스로 변화하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지식에 매달리지 않는 새로운 지식창출 △학문간의 칸막이 제거 △대학과 학계의 경계를 넘어 타 분야로의 영역 확대 △인문학 강의를 위한 새로운 매체의 개발을 제안한다.

즉 “인문학자는 단순히 과거를 복제하지 말고, 새로운 현재의 참여자, 미래의 형성자가 되어야하며, 컴퓨터나 비디오 같은 테크놀로지가 적이 아니라 우방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길만 교수는 또 대학 사무처가 외국어를 문학적 문화적 분석매체가 아니라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사실 모든 언어교육은 문화적 내용이 들어있는 ‘컨텐츠 코스’여야만 하며, 문학교육 역시 궁극적으로는 문화교육인데 말이다.

최근 문화연구 센터로 변신한 일본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와 길만 교수의 저서는 이 기초학문 위기의 시대에 인문학이 나아갈 길과 활성화 방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성곤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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